당신은 카페에서 무엇을 경험하나요?
지난 주말에 팔당에서 가평 쪽으로 가는 길, 정체된 도로 위에서 북한강을 바라보는 것도 지겹습니다. 이 많은 차들은 분명 청명한 가을 날씨에 춘천으로, 강원도로 혹은 그 길 어딘가의 좋은 여행지를 목적지로 가고 있겠지요. 이 길에는 즐비한 식당이나 수려한 공원들을 제쳐두고 유독 차량들이 못 들어가서 줄을 서고 이미 안쪽으로 한가득 주차가 되어 있는 곳들은 하나같이 적당한 뷰와 몇 가지 베이커리 메뉴들을 제공하는 카페들입니다. 어찌하여 대한민국은 이렇게 카페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걸까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건물 첨탑에 꽂힌 십자가 보다 많다는 카페지만 아직도 한 모퉁이를 지나면 새로운 카페가 오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입니다. 아니, 커피도 마시는 곳입니다. 관계의 장이고 잠시 새로운 분위기를 빌어 쓰는 점유 공간이기도 합니다.
TV시리즈 프렌즈에서 레이첼이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카페이자 등장인물들의 아지트였던 Central Perk 카페를 떠올려보세요. 모니카나 로스가 엄청난 비밀을 함부로 누설하거나 피비가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부르거나 조이가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레이첼이 시종일관 메뉴를 잘못 주문받는 활기가 넘치는 공간입니다.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곳에서는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죠. 등장인물들이 그렇듯이 시청자들도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받았습니다.
십수 년 전, 브루클린에 한동안 머무를 때가 있었습니다. 자주 방문한 덤보의 한 카페에 세 번째 방문했을 때부터 바리스타인지 직원은 호명하기 위해 종이컵에 적었던 제 이름을 기억하고 전날 내려준 맛과 비교해서 어떤지 물어보며 대화를 편하게 시도했습니다. 그저 형식적인 스몰톡이 아니라 가게의 분위기를 어떻게 유지할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자연스러움이었죠.
업무 밀집 지역이 아닌 이상 서울의 대부분의 스타벅스 안에는 혼자 온 손님들이 각자 랩탑을 열어놓고 공부나 일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 공부나 일을 하면 왠지 모르게 집중이 더 잘 된다는 사람들이 많죠. 심리학적으로 낯선 공간은 일상적인 패턴의 고리에 빠질 확률을 낮추기 때문에 조용한 자기 방보다도 소음과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카페가 집중에 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곳은 고요가 인테리어인 것이죠."
기본적인 카페의 기능과 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도 개개인이 엄격히 분리되기보다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며 에너지를 얻는 것이 크지요. 낯선 이들로부터 개인의 집중을 추출하는 것도 그 에너지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 낯선 사람과 어떠한 교감도 하지 않는데 묘하게 그 거리감들이 주는 안락함이 있습니다. 카페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에는 커피를 서빙하며 함께 작은 메시지 카드를 줍니다.
"앤트러사이트 서교점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을 담은 고요한 공간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모든 대화는 옆 테이블에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부탁드립니다."
참으로 유연하고 젠틀한 제안의 제스처입니다. 이 카페는 풍경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넓은 정원과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미니멀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고, 카페에 음악은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이곳은 고요가 인테리어인 것이죠. 그래서 그 제안도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모두들 이 정도의 데시벨 속에서 바이브를 찾는 협약을 지킵니다. 처음엔 지킨다고 생각하지만 곧 향유한다는 것을 깨닫죠. 심지어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에도 이 카페에서는 책을 읽을만합니다.
카페는,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를 마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약수의 리사르 에스프레소 바는 좁은 매장에 스탠딩 바 앞에 서서 두 잔, 세 잔씩 연거푸 몇 가지 에스프레소를 들이켜고 사람들은 그 공간을 빠져나옵니다. 지금이야 하염없이 줄을 서 있어서 그 '서둘러 마시고 나오는' 이탈리안의 에스프레소 행동양식은 다소 멋이 떨어졌습니다만 여하튼 이 스탠딩 바에 서서 하염없이 수다를 떨면서 호호 불어가며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아메리카노처럼 마시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양식을 습득하지요. 이탈리안들이 아침에 주방에 잠깐 서서 비타민을 삼키고 나오듯 에스프레소 그 자체를 가볍게 마시고 바로 나옵니다. 우후죽순 생긴 패션 에스프레소 바들이나, 또 청담동에 화려하게 자기 복제를 한 리사르 에스프레소는 더 이상 약수의 그 분위기를 찾아볼 순 없습니다만.
카페만큼 문턱이 낮은 경험 공간이 또 있을까요? 카페는 사람들을 쉽게 불러들일 수 있고, 그 안에서 미각을 포함한 거의 모든 감각의 경험을 제공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건 시간이죠. 명동의 나이키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어가서 체류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조던1을 사건 안 사건 그 시간은 카페에서 체류하는 시간에 비하면 무척이나 짧습니다. 카페는, 또 브랜드는 그 시간만큼 소비자의 더 많은 감각을 두드릴 수 있는 것이죠.
"식당과 마찬가지로 카페는 온갖 경험의 총합체입니다."
디올과 구찌,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 IWC, 브라이틀링 같은 시계 브랜드, 아더, 더 일마, 젠틀몬스터 등 다양한 패션, 뷰티 브랜드들이 F&B를 접목하거나 F&B 공간을 팝업 진행하거나 독립 오픈했습니다. 명품 앤트리 소비자가 신세계 백화점 구찌 매장을 둘러보지 않더라도 구찌의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에서 구찌의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감각을 통해서요.
식당과 마찬가지로 카페는 온갖 경험의 총합체입니다. 식당 보다도 더 경험하기 쉬운 곳이죠. 온갖 경험의 총합이라는 말은 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른 지향점으로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젊은 여성이 고가의 머그잔과 아름다운 도자기 접시에 담긴 커피와 윤기 가득 흐르는 까눌레를 들고 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갈색의 네모난 플라스틱 트레이에 말이죠. 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사용하는 바로 그 플라스틱 트레이. 내용물들을 마블 대리석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트레이는 어디에 둘 지 몰라 망설이다가 본인의 의자에 잠시 내려놓고 대신 일어서서 신속하게 테이블 위의 사진을 찍습니다. 얼마 전 예술 서적들을 잘 진열한 한 카페에서 목격한 장면입니다. 트레이까지 고가의 제품을 사용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토제닉으로는 이제 부족하다는 겁니다. 카페는 엄연한 사업입니다. 사업성을 무시하고 핀율의 체어를 깔고 아르떼미떼의 조명만 설치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죠. 경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에 예상한 예산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인스타그래머블을 넘어 메모러블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올봄에 오픈한 스타벅스 더북한산점은 이제 스타벅스라면 식상한 프랜차이즈로 생각할 수도 있는 대상들에게 대기업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입지 선점과 규모의 파괴력으로 소비자들에 다시 환기시킵니다. 스타벅스는 유난히 이와 같은 상징성이 있는 장소에 잘 선보입니다. 300평 규모의 더북한산점도 연일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룬다고 하죠. 근처 북한산 초입의 아웃도어 매장들의 상권 구조마저 변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분명 북한산 근처의 시민이나 북한산 등반이 목적이었던 등산객으로는 사료되지 않지요.
먹을 만들던 곳이라는 지역성을 그대로 브랜딩 한 용인의 묵리 459, 거대 식물원을 표방한 파주의 앤드테라스, 부산의 어촌마을 칠암의 사계를 담은 칠암사계와 같이 작정하고 브랜딩을 하고 하여 만들기 전부터 줄을 세울 것이 분명한 카페들도 많습니다. 베를린이나 코펜하겐의 유명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의 지점도 턱턱 잘 세워집니다. 이런 카페들은 차로 1~2시간을 가는 것쯤은 기꺼이 감수하는 방문지가 되었죠. 일부러 그 공간을 가는 데에는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길, 인증사진뿐만이 아닌 경험적 가치가 그곳에 있길 바랍니다. 실제로 외곽에 작정하고 만든 카페들은 그 공간적 경험을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 터입니다.
특히나 코로나를 지나오면서 홈카페 문화는 많이 확대 됐습니다. 훌륭한 커피를 손쉽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보편화되었죠. 2~3천원 대의 저렴한 커피 시장도 막강합니다. 즉,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가 아닌) 커피를 마시는 일뿐이라면 카페에 방문하는 것은 경험의 기대 때문입니다. 혼자 공부하든, 책을 읽든, 수다를 떨든, 새로운 공간 체험으로 영감을 얻든. 잘 만들어진 공간과 커피와 서비스에서는 확실히 생각의 스위치를 전환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대화를 농밀히 만들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온 나라가 카페 공화국이 되어가는 게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부동산 절망 세대들의 공간 향유로 해석해 봐도 측은한 일이고요. 최전선의 정밀한 브랜딩으로 인스타그램을 도배하고 줄을 세우는 카페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엽니다. 너무 멋있고, 브랜딩의 이음새도 없이 완벽하고, 맛있고... 그런데 뭔가 아쉽습니다. 카페는 뭔가 좀 더 사람이 있는 장소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인증하느라 바쁜 SNS와의 교감이 아니라 진짜 사람과의 교감 말이죠. 그게 굳이 공간에서 일행과의 대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직원이든 손님이든 일련의 스킨십, 아니 온도가 좀 더 다르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인스타그래머블을 넘어 메모러블한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예전에 우연히 연희동의 '다크에이션커피'라는 카페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앞에 와인을 사러 갔다 소나기가 내려서 급하게 카페 안으로 들어갔는데요. 카페는 고작해야 6평이나 될까 하는 작은 크기였습니다. 계획하고 구비된 가구는 단언컨대 하나도 없었고요. 플라스틱 의자가 있기도 했고 스노우피크 캠핑 테이블이 있기도 했고 옛 MDF 책장이 있기도 했죠. 하지만 바 앞에 적어놓은 커피 메뉴와 설명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공간이 있으면 이곳저곳에 꽂혀있던 책들, (아마도) 주인 커플의 케미, 주인과 손님들과의 거리와 온도, 파는 물건(커피)에 대한 전문성, 단골과의 대화(동네 단골끼리 서로 과하게 이야기하느라 낯선 손님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 적절한 수준), 강아지 손님들, 좁은 공간의 거리에서 모르는 손님들끼리의 짧은 인사와 미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양식을 습득하니까요.' 창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한편에 앉아 참 오랜만에 카페에서 편안하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옛날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요. 카페의 인테리어뿐 아니라 집요하게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