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과 추억의 차이
2026년 05월09일
AI 세대의 실무자들에게
2026년 11월01일그간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약 6개월간 아무 일도 손에 잡지 않았습니다. 목적 없이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아서 함부로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았더랬습니다. 들고 있던 목적이 다 무너진 느낌이었거든요
저는 브랜딩과 마케팅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 브랜드를 잘 갖추어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적합한 소비자에게 잘 판매하도록 하는 일이죠. 저는 그걸 이런 말로 갈음하곤 했습니다. “누군가 내게 기업은 가치 추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어본다면, 가치 추구를 통해 이윤 창출을 하는 존재가 기업이라고 말하겠다.“라고. 풀어 말하자면, ’이윤 창출을 함으로써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한다.’가 됩니다. 다시 좀 더 이상적으로 풀면,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여 이윤을 창출한다.’가 됩니다. 인과의 순서가 분명히 다르지만 말장난 같은 거죠. 문제는 해결하지만 수익을 낼 수는 없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면 쉽게 나오는 답입니다. 공익 사업이 목적인 조직을 제외하고 그걸 선택할 사람(기업)은 거의 없더군요. "문제를 해결하면, 그것은 가치를 충족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가(재화)는 따라온다"라고 지금까지 믿어 왔지만 중요한 건 지금 세상에 ‘어떤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있느냐는 것이죠.
세상은 끝갈 데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여 기술의 수혜를 입어 우리는 더 똑똑해졌나요? 세상은 그런지 몰라도 소비자는 더 ‘멍청’해졌습니다. 우리는 바야흐로 고도화된 디지털 미디어의 낙진에 뒤덮여 살고 있습니다. 의지와 관념을 AI 또는 그로 인해 만들어진 시류(알고리즘)에 의탁해서 살아가고 또 소비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믿게 하니까요. 보고 듣는 것이 획일화된 정보에 지배되면 확고한 정치관과 특정 상품의 합리성에 수월하게 자신을 맞추게 됩니다. 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하지요. 어떠한 네트워크 기기(스마트폰이나 PC) 없이, SNS나 OTT 서비스를 일절 구독하거나 보지 않고, 어떤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쿠팡이나 네이버 쇼핑 등)도 사용하지 않고,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주장해도 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무언가를 파는 일은 양단이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더 쉬워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빠지는 구렁텅이에다가 구멍을 파고(또는 더 깊게 파고) 사람들을 유인하거나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곳에 자빠질 수밖에 없도록 주변을 가로막고 그 구멍을 공략하는 것. 잔인하게 얘기하면 그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구멍에 빠지기 쉬운) 조금 더 우매한 소비자를 찾아 돈 놓고 돈 먹는 게임. 그러니까 저는 클라이언트가 조금 더 우매한 소비자를 찾아서 더 높은 값에 상품을 파는 것을 최적화 또는 가속화하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더 많은 문제를 스스로 만들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을 무언가를 소비하며 치르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문제 자체를 소비하는 세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환멸입니다.
믿어 왔던 ‘가치’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스스로 합리화를 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소비자에게 가치를 파는 것이지 상품을 파는 게 아니야.’라고 말이죠. 제가 그렇게 생각했건 말건 클라이언트는 ‘상품’을 팔았습니다. 그러니 저 좋자고 스스로에게 좋은 해석을 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세를 뒤로하고 머리 밀고 절에 들어가거나, 극단적 미니멀리스트로 살거나,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세계로 가서 사는 수밖에 없는 걸까도 꽤나 진지하게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일할 때의 감각을 좋아합니다. 그 감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채근하자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몰입하는 시간의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결과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저라는 사람의 작동 메커니즘입니다. 저는 몰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행동 양식으로 삼으며 살아왔습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잘됐고 그래서 20년 넘게 일부러 다른 분야의 시장 상품(생리대에서 자동차, 파인 다이닝에서 프랜차이즈 사업까지)을 파는 일을 맡아 왔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결점을 찾는 일은 몰입에 있어 최적의 먹잇거리가 되었지요. 두 번째 이유는 누군가를 돕는 것인데, 이것을 보람이라고 해야 할지, 효능감이라고 해야 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멋도 아닌 자의식 과잉의 수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저를 움직입니다. 아마도 몰입이 일의 방식에서 필요한 감각이라면 돕는 것은 거의 궁극적인 일의 목적이라고 하는 게 옳을지도요. 다만 누군가를 도와서 그 사람(조직)이 다른 누군가의 허점을 파고드는 일을 수월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맹점을 취할 필요는 없죠. 나아가 다른 사람의 피해마저 불사할 순 없습니다. 그 폐해란 당장 벌어지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에게 불러올 피해까지 포함합니다.
제가 직접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상품이, 서비스가 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또 미래에 해를 입히지 않을 사업 아이템을 저는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 많은 사업들을 곁에서 보고, 전략을 세우고, 론칭하고, 그 상품들을 팔았음에도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태,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는 근거로 지금 하는 일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아, 여기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아직 더 많은 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과 같은 미성숙한 담론까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모조리 치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사방팔방에 난무하는 구멍 파기에 매진하면 되겠습니다.
희망하는 바, 앞으로는 좀 더 본격적으로 ‘돕는 일’을 구체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을 도울 수 있는지 일단 세심하게 세상을 보려고요. 세상을 보는 일을 좀 더 여러분과 나누며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