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 헤일메리, 인류 따위
2026년 03월28일
조앤 디디온의 '상실'을 읽는 동안에 몇 번이나 커다란 비애가, 조앤의 감정의 파도가 고스란히 전이되어서 밤새 힘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책의 마지막 부분을 마저 읽었고 이내 커다란 공허함이 찾아왔습니다.
'상실'은 조앤 디디온과 남편인 존 그레고리 던이 딸의 중환자실에 다녀온 2003년 12월 30일 저녁 식사 도중 남편이 갑작스럽게 심장 이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겪는 조앤의 비애록(저는 그렇게 이름 지어봤습니다)입니다.
남편이 죽는 내용은 스포랄 것도 없습니다. 책이 시작하자마자 그 일은 벌어지니까요. 40년을 함께 산 남편. 조앤과 존 모두 작가였기 때문에 조앤은 남편이 죽기 전까지 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습니다. 위독한 딸의 중환자실을 나와 겨우 식사하던 부부의 삶은 예고도 없이 한 순간 끝나 버립니다.
"어떤 일들은 그냥 일어나고 말 것이다. 이 일은 그런 일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삶이 끝난다."
조앤 디디온은 감각을 이성적으로 언어화하는, 어떻게 보면 냉정한 작가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의 1년 간 작성된 이 에세이는 감정의 가장 깊은 곳까지도 내려가지만 반대로 조앤 특유의 이성의 사고가 공존합니다. 벌어지는 일들에서 어떤 것을 글로 풀어내야 한다는, 평생을 작가로 살아온 본능적인 작가의 기록에 경외감마저 느껴지죠.
조앤이 남편 존의 해부를 허락했을 때, 그녀는 동시에 정서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그녀와 남편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와 남편 사이의 기억을 해부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실제로 책은 유능한 외과의사(작가로서의 조앤)의 기술 하에 남편과 그녀 사이의 기억을 재단하고 그 장기를 정확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들여다 봅니다. 때로는 아내로서, 때로는 의사(작가)로서 그 일을 수행하죠.
중환자실에서 겨우 나온 딸과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LA로 간 딸 역시 공항에서 쓰러져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쯤 되면 그녀가 아직까지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게 신기하다 싶죠.
"나는 평생 내가 운이 좋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그러고 보니, 지금에 와서 내가 불운하다고 생각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LA로 건너 가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남편을 잃은 비애와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비애가 겹치며, 그녀는 남편과 대부분의 결혼 생활을 했던 LA에서의 기억이 순간순간 오버랩됩니다.
"그전까지는 슬퍼하기만 했을 뿐 애도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애는 수동적이었다. 비애는 저절로 생겨났다. 그러나 비애를 다루는 행위인 애도는 주의를 집중해야 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그녀에게 찾아오는 한없는 결핍, 공허, 의미의 부정, 무의미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 그녀에게 어떤 일이었을까 계속 생각했습니다.
책에서 조앤이 인용한 C. S. 루이스가 아내와 사별한 후에 쓴 글입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충동들이 좌절되면서 긴장감이 된다. 이 생각 저 생각, 이 감정 저 감정, 이 행동 저 행동, 모두 대상이 H였다. 그런데 그 과녁이 사라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시위에 화살을 메기다가 쏠 곳이 없음을 깨닫고 내려놓는다. 너무나 많은 길이 생각을 H에게로 몰고 간다. 그중 한 길로 걸어간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길을 통과할 수 없게 경계 말뚝이 쳐져 있다. 한때는 길이 그렇게 많았는데, 이제는 막다른 골목만 무수하다.’
저는 평상시에 '기억'과 '추억'의 차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기억은 기본적으로 인지적 사실입니다. 과거의 어떤 사건, 감각, 장면이 지금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거기 있습니다. 기억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부르지 않아도 찾아옵니다. 통제되지 않고, 종종 왜곡되며, 감정과 무관하게 작동하기도 합니다.
추억의 '추(追)'는 쫓는다는 뜻입니다. 추억은 내가 과거를 향해 능동적으로 방향을 틀 때 생기는 것이죠. 과거의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해 내가 지금 맺고 있는 정서적 관계입니다.
조앤은 기억을 추억으로 전환하기를 거부합니다. 거부하면 그가 진짜로 죽은 것이 되기에 그것을 막으려고 하죠. 그의 신발을 버리지 못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신발을 버리면 그가 돌아올 수 없거든요.
기억은 현재형입니다. 추억은 과거를 과거로 받아들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추억이 가능해지려면 '그것은 이제 끝났다'는 수용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별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게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끝나버린)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추억이라는 따뜻한 것을 갖기까지 시간이 오래, 어쩌면 아주 오래 걸린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가지는 일을 저는 '기억'의 일로 생각하곤 합니다. 기억이라는 그 수동적이고 비자발적인 경험이 나와 관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처럼 느껴지거든요. 그게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아니게 됩니다. 반대로, 기억하기에 '우리'가 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생을 같이 한 적도 없는 연인을 마치 40년 만에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공허함이 찾아온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손에 닿을 수 있는 관계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있습니다.
p.s. 넷플릭스에 있는 '조앤 디디온의 초상'도 추천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제가 넷플릭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입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