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전문가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부터.
브랜딩 클래스, '브랜딩을 한다면' 시리즈
1. 브랜딩의 적, 편향 - 현재글
2. 브랜딩의 길, 설득의 세계
3. 브랜딩의 완성, 디테일
먼저 여기에서 말하는 브랜딩이란 단지 디자인의 영역도 언어의 영역도 아닌 총체적인 전략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다음, 과연 제가 브랜딩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면 모르겠습니다. 저는 18년 동안 많은 프로젝트에서 브랜딩, 마케팅 에이전시, 디자인 스튜디오, 영상 스튜디오, PR 에이전시, 광고 대행사, 기업 실무진 등과 일 해오면서 해당 실무자들을 봐왔고 저 역시 그 일들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을 통한 이야기이니 자격증은 구비 못 한 점 양해 바랍니다.
옛부터 광고나 마케팅 일을 하면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쪽의 일이란 맥락을 이해하고 융합해 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디자인만 해도 드로잉만 잘한다던지, 목업을 잘한다던지, 프리젠테이션을 잘 구성(스토리텔링)한다던지 역량이 다 다릅니다. 무엇을 디자인을 잘한다고 정의하나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걸 잘 그려주는 게 좋은 디자이너라는 정의만큼은 동의하기 어려울 거 같고요. 카피는 문장력이 좋은 사람이 있고 다작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문장은 약하지만 대상에게 꽂히는 단어를 잘 골라내는 사람도 있지요. 누구를 좋은 카피라이터라고 할 수 있나요? 우리는 그것을 잘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창의력이 좋다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생각의 훈련이 잘 된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이고, 좋은 기획자라고 칭합니다. 목격한 바, 창의력은 훈련된 근육이 튀어나오는 결과이지 신내림 같은 영감이 아닙니다. 본 것을 해석해 내고 해석한 것을 다른 것과 융합해 냅니다. 그 방식을 대상이 감동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해 내는 것이 잘 훈련된 근육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일'이고 저는 그걸 창의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무슨 훈련을 해야 하는 걸까요?
먼저, 창의력을 신장시키는 일은 몰라도 창의력을 저해하는 것은 한 가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편향입니다. 브랜딩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내도록 편향과 싸운다고 생각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훌륭한 브랜딩 전략가나 마케터는 역량만큼이나 자신의 확고한 취향과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뭔가 모순된 이야기처럼도 들립니다.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음에도 얼마나 상황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느냐가 실은 잘 드러나지 않는 능력이죠. 요즘 세상은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아니 시각 이전에 이미 내 시야를 다 가린 채로 숙제를 풀어야 하는 형국입니다. 누군가의 넷플릭스 추천에는 다른 누군가의 최애 영화가 절대로 뜨지 않을 테니까요.
"창의력은 훈련된 근육이 튀어나오는 결과이지 신내림 같은 영감이 아닙니다."
편향의 중력을 무시하는 창의력의 천재들도 개중에는 있는 것 같습니다. 편향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경도되어 그것밖에 파지 않은 누군가가 콘크리트를 뚫고 피워내는 꽃도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건강한 정신으로 살고 싶다면 일단 대부분의 경우에서 천재는 제외하고 살아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말 그대로 편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다만 견제라도 하면서 보고 들으며 소화를 해야만 유연하게 섞여서 잘 빚어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재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에게 편향은 즉, 배제된 포용력은 창의력의 저해 요소입니다.
이 업에서 피치 못하게 저를 설명해야 할 때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게 제가 가진 거의 유일한 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분석을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접근합니다만 사실 분석이라는 말보다 저는 이해라는 말을 더 선호합니다. 이해라는 말이 말랑해 보여서 분석이 더 명확한 근거를 도출해 낼 것처럼 들립니다만 분석이 환자를 메스로 다 헤치고 뜯어보는 일이라면 이해는 환자와 대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석(이해)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일단 가장 큰 사단은 문제 정의가 잘못된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기에서부터 이 이후 짜게 될 모든 전략과 플랜들은 다른 산에다가 포격하는 격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좋은 결과물을 내는 일의 대부분은 분석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성과물을 도출했을 때였습니다.
"분석을 통해 통찰을 얻고, 통찰에서 핵심을 걸러내고, 핵심으로 답을 빚는 것이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주니어들에게 자료 준비를 시켜보면 십중팔구 성급히 답을 들고 옵니다. 답을 가져오라 한 적 없는데 말이죠. 답을 들고 와서는 분석을 정당화합니다. 분석을 통한 답이 아닌 답을 위한 분석은 당연히 허술하거나 왜곡된 경우가 허다하죠. 그런 분석에는 어김없이 성급한 일반화와 편향이 고개를 내밉니다. 물론 반대로 분석을 통해서 답이 '바로' 나오는 것은아닙니다. 분석을 통해 통찰을 얻고, 통찰에서 핵심을 걸러내고, 핵심으로 답을 빚는 것이죠. 빨리 답을 내보여 자신을 증명하고 싶겠지만 분석이 미약한 답은 바라지 않던 형태로 자신을 증명하는 꼴이 됩니다. 차라리 무슨 일이든 답을 빨리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빨리 대답하지 않아서 상대방이 답답해하는 것이 신중하지 못해 신뢰하지 못하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다들 분석의 방식과 방법에 대해서는 잘들 교육받으셨을 테니 모를 리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객관화된 태도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배워오신 분석(업과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하겠습니다)을 시행할 때 객관적이고 원시안적인 시각을 가져야만 우리가 그렇게 발취하고 싶어 하는 다이아몬드, 즉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균형을 잡으라는 게 아니라 이해를 해보라는 이야깁니다."
한 가지 훈련 방법을 말씀드리자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로그인하지 않고 피드를 띄워 봅니다. 그 피드에는 어떤 사용자 취향도 반영되지 않은 지역 기반, 즉 한국에서의 인기 콘텐츠가 뜰 겁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치면 대부분 포스팅의 마지막에 '여기에 광고를 실으려면' 따위로 구성된 가십거리 콘텐츠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겁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그 포스팅들을 열어서 거기에 달린 댓글들을 한번 읽어 보세요. 아마도 그 가십거리들이나 자극적인 포스팅들의 댓글들에는 편향의 끝이 펼쳐질 겁니다.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그 편향에 휘둘린 댓글을 단 사람들조차 간과하지 말고 그 현상을,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해 보는 겁니다. 숲을 보듯 그걸 냉정하게 읽어 내려갈 수 없다면 당신도 여전히 편향의 한쪽 끝을 달리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게 됩니다. 인터넷에서 조선일보와 한겨레 기사의 댓글들을 모두 골고루 읽어보세요. 균형을 잡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를 해보라는 이야깁니다. 전략을 만드는 사람은 언어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여러분은 갖은 정의를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만큼 언어를 잘 구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싫다고!"는 익명으로 댓글을 달 때나 쓰는 거지 이쪽 일을 할 때 쓸 수 있는 언어는 아닙니다.
분석이 잘 되고 문제 정의가 정확히 된다면 해결의 실마리는 무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창조는, 또 브랜딩은 유에서 이루어집니다. 분석이 잘 되면 씨줄과 날줄의 종류와 질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단지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팝업 성공 사례를 찾아서 해당 레퍼런스들에서 조금 다른 걸 보여주자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건축과 패션과 미술에서 엮을 날줄을 찾아낼 수도 있지요. 핵심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레퍼런스 체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해당 업이나 씬에서 최근 잘 된 마케팅 사례, 브랜딩 사례 찾는 일은 뒤로 미뤘으면 합니다. 그걸 보고 성공 공식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죠. "레트로가 트렌드니까 다른 브랜드에서 '아직' 하지 않고 남아있는 레트로 요소를 캠페인에 적용해 보자." 말하자면, 이런 게 가장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일인 겁니다.
트렌드나 유행을 죄다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문제에 부응하는 자기 해석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집중하기보다 트렌드와 유행에 맡겨 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의 선택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죠. 씨줄과 날줄을 엮는 것은 본 것을 해석해 내고 해석한 것을 다른 것과 '융합'하는 단계입니다. 융합의 결과를 예측하기에 앞서 융합의 대상을 끄집어내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적절한 형태로 인덱싱이 되어 있지 않다면 기억의 DB든 구글링의 결과에서 건져내 보든 융합의 대상으로 떠올리기 어렵겠죠. 그러면 이미 기존에 성공한 피상적인'패턴'에 유혹되기 십상입니다.
"자기 해석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큰 기술에 손이 갑니다."
융합을 드라마틱한 장르 간의 조합이나 변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마치 국악과 힙합의 콜라보레이션처럼 말이죠. 그런 이종 간의 조합이라면 국악과 파인다이닝과의 조합 수준이 그나마 대중의 인식에 노크할 수 있을 겁니다. 70년대 팝과 90년대 팝을 조합하여 2020년 식으로 풀어낸다. 이종이 아니지만 이런 것도 당연히 융합입니다. 70년대 팝과 90년대 팝이 은하계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포인트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면 말이죠. 여러분이 이미 대중문화에서 많이 경험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융합'이라고 부르지조차 않지요. 자기 해석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큰 기술에 손이 갑니다. 실전 격투에서 되돌려 차기 같은 거대한 기술은 쉬 통하지 않죠.
네, 결국 꼰대 조언의 천편일률적인 그것, 독서에 다 달았습니다. 나름 세 가지 이유를 분명히 밝혀 볼게요.
첫째, '카피 잘 쓰는 법'과 같은 방법론 책 말고(이미 그런 건 숱하게 읽었을 거잖아요?) 하루키(소설)나 보들레르(시)를 읽어 봅니다. 방법론이나 자기개발서는 쉽게 쓰여야 합니다. 그래서 쉽게 쓰여 있습니다. 물론 쉬운 글은 당연히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좋은 글이 쉬운 글만은 아닙니다. 보통 성인이 2만~10만 개의 어휘 정도를 익히고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는 5천 단어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번쯤 쓸까 말까 한 표현과 단어를 굳이 읽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면요. 그 한 번 쓸까 말까 하는 단어를 마음에 심어놔야 '그 한 번'의 기회에 그 단어를, 그 심상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기회란 브랜딩을 하는 사람에게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느냐 마느냐의 절호의 차이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물론 세상 쓰지 않는 현학적 단어를 가져와서 뭔가에 삽입한다고 좋은 브랜딩이 될리는 없겠죠. 다른 언어를 안다는 것은 인식의 지도가 더 광활한 것을 의미합니다. 설령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죠.
작가 김훈은 400여 쪽에 달하는 '남한산성'에서 '그러나'를 단 한번 사용했다고 합니다. 김정선 교정자가 그걸 세어봤다고 하는데요. 접속 부사뿐 아니라 주격 조사 '이, 가' 역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접속사로 논리를 빌어쓰지 않고도 담백한 문장으로 그 논리의 전개를 모두 구현했다는 것이죠. 처음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카피라이터에 관한 글이 아닙니다. 디자이너든 개발자든 기획자든 마찬가집니다. 명료함으로 가기 위해 깎고 깎는 일을 모두가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 더 많이 깎아 낼 수 있습니다. 비단 언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붓을 들었건 펜을 들었건 물건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인식의 지도를 넓힐 수 있는' 독서는 꼭 필요합니다.
"명료함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알고 있어야 더 많이 깎아 낼 수 있습니다."
둘째, 많이 안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일 년에 한 두 권 읽는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종의 불안으로 독서 리스트가 언제나 잔뜩 쌓여 있는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업에서는 많은 정보와 인사이트를 섭렵하고 가져야 한다는 강박을 갖는 것은 대체로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천히 그리고 정확히 읽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충분히 가치 있다면 다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다음 책을 읽으러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800페이지가 넘는 총균세와 코스모스를 다 격파했다고 누군가 당신의 인생을 격상시켜주지 않을 겁니다. 그 책을 읽고 지식과 시야를 얻고 싶은 거지 독서 완료 스탬프를 받고 싶은 게 아니잖아요?
22분부터 재생 "인간은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가?"
셋째, 나를 이해함으로써 사람을 이해합니다. 브랜딩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사람에게 가치를 교환하기를 제안하는 겁니다.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에게 이것이 어떤 가치인지 이해하는 것이 이 일의 대부분입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읽는 이유로 자기 이해라는 중요한 가치를 언급합니다. 여기에 제가 덧붙이자면 자기 이해를 통한 타인의 이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독서인 것이죠. 이해가 부족하고 하여 편향이 가중된 댓글들이 가십거리 포스팅에 잔뜩 붙어 있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단련되어 있지 않다면 쉽게 그 편향에 편승할 것이고 좁아진 시야와 이해로 현상을, 대상을 파악하고 답을 도출하게 될 겁니다. 실제로 그런 마케팅이 무수하게 많지만(실제로 '여기에 광고를 실으려면' 이라잖습니까) 다들 그런 마케팅하자고 지금 이 긴 글을 읽고 있는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융합해 낸 것을 대상이 감동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해' 내는 일에 관해서는 다음 시간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브랜딩 클래스, '브랜딩을 한다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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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