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브랜드를 운영한다면?
마치 한강 작가의 노벨 수상 이후 서점에 몇 년 만에 찾은 사람들 마냥 저도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습니다. 봉준호 감독(이하 봉준호)의 <미키 17>을 보기 위해서였죠. 미키 17은 워너브라더스의 영화입니다. 봉준호가 많은 메이저 영화사에서 탐을 낼만한 네임벨류의 감독이 된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키 17>은 미국 영화입니다. 그것도 1억 5천만 달러가 들어간 블록버스터급 영화죠. 독립 영화가 아닌 메이저 스튜디오의 미국 영화에서는 프로듀서가 더 큰 권한을 가지는 것이 일반입니다. 영화에서라면 단연코 최종편집권(final cu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이 무얼 찍었든 편집에 따라 영화는 다른 호흡, 다른 장르, 종국엔 아예 다른 영화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봉준호는 <미키 17>의 감독 계약 시 최종 편집권을 감독 본인이 갖는다고 명시했습니다. 미국 메이저 레이블 영화사에서 만드는 영화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단지 자국 감독에 도취된 위상의 작은 편린이 아니라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감독의 엄청난 기염을 뜻합니다. 미국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는 흥행과 작품성을 균형 있게 기대하는 몇 안 되는 감독들에게 주어지는 특권과 같은 일이죠. 사실상 첫 번째 미국 데뷔작이었던 넷플릭스의 <옥자> 역시 봉준호 감독이 최종편집권을 가지고 제작된 영화입니다. 봉준호의 영화라는 브랜드는 그야말로 이제는 대체불가능한 브랜드가 되어 버렸죠.
<옥자> 때도 그랬지만 <미키 17>에서도 언론 매체에서는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의 찬양을 앞다투어 내보였습니다. 유튜브에서는 배우들의 코멘터리를 더욱 부각한 형태로 짜깁기 되어 수많은 영상에서 다루어집니다. 일면, 배우들이 프리미어 시사회나 매체 인터뷰에서 응당 갖추어야 할 예의의 코멘터리도 있었지만 해외나 국내 배우를 떠나서 봉준호와의 작업을 즐기지 않는 배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특히나 미국 배우들이 봉준호를 추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완벽한 스토리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준호는 어릴 적 만화를 좋아했다고 하죠. 대학 시절에는 만평 만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일단, 봉준호는 프레임 속 표현을 만화 컷처럼 잘 보여주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사전 준비로 이 스토리보드를 거의 그대로 촬영 전과 촬영 현장에서 주문했죠.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서는 봉준호만큼 상세한 스토리보드로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작업이 된 필름들에서 최종 버전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일이고요. 하지만 봉준호와의 작업에서는 그가 어떤 결과로 치닫으려고 하는지 스텝들과 배우들이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명확한 그림에 의해서요. 실제로 봉준호는 최종 편집본이 스토리보드와 거의 다르지 않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계획도 계획이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리더라면 어떤 구성원이라도 허우적거리게 만들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어떤 불구덩이라도 즐겁게 뛰어들게 하겠죠.
그렇다고 스토리보드대로만 현장을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스토리보드에 적힌 감정대로 최대한 촬영을 하고 나서는 봉준호는 배우에게 이제 배우가 도출한 감정으로 연기를 시연해 보도록 합니다. 이는 단순히 배우에게도 주도권이 있음을 알려주려는 쇼잉이 아닙니다. 캐릭터에 대한 해석은 처음에는 감독이 가지고 있으나, 캐릭터와 함께 캐릭터로 배우가 더 생각하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배우가 캐릭터를 지배한다고 봉준호는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다다를 수 없었던 캐릭터의 해석을 배우가 찾아내게 하고 그것을 그가 '발견'하는 것은 그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일이라고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극한으로 데리고 가는데 나도 내가 몰랐던 나의 극한이 너무 짜릿해"
일하는 사람 간에 이런 신뢰가 교차하면서 벌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몰입이죠. 완벽하게 다 준비한 대로 찍으니 영화 현장은 기계처럼 돌아가고 수월하기만 할까요? <마더>의 촬영 현장에서는 대배우인 김혜자 배우를 극한까지 몰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단순한 장면인데도 30번의 테이크를 가기도 했죠. '저 사람이 나를 극한으로 데리고 가는데 나도 내가 몰랐던 나의 극한이 너무 짜릿해'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면 30번의 테이크도 기꺼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리더의 실리와 이득 때문이 아니라 나의 실리와 이득 때문임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완벽히 짜인 스토리보드에서도 스텝과 배우들은 봉준호 영화의 현장에서는 자유도를 더 느끼는 것 같습니다.
<미키 17>의 미키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인물입니다. SF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캐릭터죠. 하지만 봉준호의 모든 영화에서는 바로 이 허술한 사람들, 봉준호의 표현 그대로라면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잔뜩 나옵니다. 봉준호는 그런 사람들에게 묘하게 관심이 간다고 합니다. 영웅 같은 사람 또는 영웅으로 성장될 사람의 고난과 대립, 그 이후의 해결이라는 보편적인 서사가 아니라 허술한 사람들의 점입가경에 집중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잘나고 멋진 외모의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아니면 성공하는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봉준호는 원초적으로 삐걱대고 허술한 사람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눈에 밟힌다'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봉준호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매력적인 것이죠. 남들이 뻔하게 생각해서 인지할 수 없었던 '그 사람들'에 관한 더 많은 통찰을 끄집어냅니다. 그것은 대부분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성들이고 자각하기 어려운 면모일 수도 있습니다. 비즈니스로 치면 봉준호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 모두가 외면할만한 시장이나 분야에서 그 가치를 찾아낼 수 있고 그 가치를 팽창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자신 역시 단 것을 탐하고, 의사가 먹지 말라는 것에 손을 대는 허술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는 합니다만 글쎄요, 허술한 사람들은 대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보게 되죠. 그가 허술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완벽해 보이는 어떠한 사람보다도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임에는 분명합니다.
봉준호는 사람에 관한 탐구를 즐겨하고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일도 즐겨하지만 결국 영화를 만드는 일 역시 사람이 하는 일임을 잊지 않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가 사람을 대하는 것에 관한 미담은 많이 있지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가 성공하지 못한 후 진행하는 두 번째 영화에서 그 당시 충무로에서 가장 유망했던 송강호 배우(이하 송강호)를 캐스팅할 수 있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봉준호가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모텔 선인장> 오디션장에서 본 송강호의 연기에 감탄한 당시 봉준호 조감독은 해당 오디션에서는 떨어졌지만 송강호에게 삐삐 음성메시지로 그의 연기를 칭찬하며 훗날 본인의 영화에 꼭 기용하겠다고 했다죠. 어쩌면 한 발짝 더 나간 사려 깊은 배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송강호는 봉준호의 진심어린 모습과 예의를 봤고 그의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에 기꺼이 출연합니다.
수많은 인터뷰 요청에도 고사하는 그의 방식은 섬세합니다. 거절의 메시지를 받고도 그 메시지들이 주옥같아 기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사람이니까요. 사람에 관한 그의 섬세함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가 현장에서 권위적인 감독의 형상을 하지 않음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스텝과 배우를 다 챙기는 것은 단지 현장을 좋은 분위기로 유지하고 싶거나, 착한 감독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기생충에서 택시 촬영을 할 때 실제 개인택시를 섭외해서 차량을 촬영했고 그 택시를 몰고 온 택시 기사님은 촬영 동안 뒤에서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슛이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봉준호는 갑자기 뭔가 잊어 먹었다는 듯 스텝에게 무전기로 다급히 기다리던 기사님에게 의자를 내어 드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긴장된 슈팅 상황에서 이런 말이 급조되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설령 그것이 의도가 있었다고 한들, 그것을 목격한 촬영진과 배우 모두 하나하나 내가 어떻게 사람으로서 감독에게 존중받고 대해질지를 가늠할 수 있었겠죠. 현장에서 밥때를 칼같이 잘 지킨 것은 사실 3D 직업에 준하는 촬영 현장에서는 구성원들에게 흡족한 복지가 아닐 수 없었을 겁니다. 옥자 촬영에서는 할리우드 시스템의 현장 인권 수준을 국내 영화 현장에까지 자연스럽게 도입시킨 좋은 사례가 되었죠.
봉준호가 봉테일로 알려진 것은 유명합니다. 하지만 감독 자신은 그 별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죠. 아마 디테일은 봉준호에게는 그냥 공기와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더 잘 신경 쓴다는 말이 기이하게 들렸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봉준호 영화에서 디테일은 공기와 같습니다. 너무 만연해서 일부러 꼽아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죠.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계획한대로 풀리는 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죠."
저는 영화광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국 영화 중에서 <살인의 추억>을 제일 좋아합니다. 매년 한 번씩은 연례행사처럼 보곤 합니다. 2003년 영화니까 지금까지 스무 번 정도 봤습니다. <살인의 추억>에 관해서라면 스물일곱 시간 정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구현한 그 세계와 서사는 볼 때마다 저로 하여금 경탄하게 만듭니다. 그 현장을 만들어 낸 34살의 감독과 그의 지휘 아래 혼연일체로 결과를 만들어 낸 제작진 하나하나, 배우 하나하나가 존경스러운 영화지요. 아직도 영화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살인의 추억>의 류성희 미술감독은 불세출의 미술감독입니다. <살인의 추억> 이듬해에는 <올드보이>를 작업했죠. 대부분의 박찬욱 감독 작품의 미술감독을 한 사람입니다. 봉준호는 박찬욱과 상반되는 스타일이었죠. 극단적인 자연의 추구와 극단적인 미의 추구를 미술에서 구현하는 감독들이니까요. <살인의 추억> 로케이션을 위해 류성희 미술감독이 자가용으로 전국을 헤맨 거리가 6만 km였다고 합니다. <살인의 추억> 당시 시나리오에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가 들고 있는 것은 단지 형사수첩으로 적혀 있었지만 류성희 미술감독은 박두만 형사에 부합되게 일반적인 형사의 포켓형 수첩이 아니라 커다란 다이어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봉준호는 더 나아가 그 다이어리에 농협 마크가 찍혀 있어야 한다고 했죠.
혹자는 특정 디테일은 그것을 뚫어져라 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작은 부분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시각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과 상황에서도 콘텍스트적인 이해의 과정이 벌어집니다. 단지 '그 작은' 디테일이 서사와 감정의 몰입을 배가시키는 것을 하나하나 가리킬 수 없을 뿐이죠. 브랜드의 사용자 경험이 브랜드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만 그 경험을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있는 일과 인지할 수 없는 수준의 일로 우리는 명백히 구분합니다. 예컨대 제품에 새겨진 명백한 로고와 제품의 만듦새 같은 것은 누구나 명백히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죠. 하지만 브랜드의 경험은 택배 박스의 박스 테이프를 뜯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집요하게 이야기하자면, 테이프의 재질부터 브랜드를 표명합니다.
영화 작업이라는 것은 불가피한 공동 작업입니다. 물론 감독이 시나리오를 완성해 낼 때까지 혼자만의 창조 과정이 있습니다만 시나리오가 좋은 것으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자신이 창조한 배역이지만 배우가 배역을 이해하는 수준이 자신의 수준을 역전하는 상황이 나오고 그때부터 배우로부터 배역을 들으려고 하다뇨. 완벽주의자가 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극단적인 결정이 아닐까요? 혼자서 생각했던 '완벽'을 추구하고 싶었다면 만화가가 되어야 했겠죠. 리더로서 완벽한 준비를 하지만 어느 순간 내려놔야 할 때가 온다고 봉준호는 말합니다. 그 순간이 연출력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이라고 그는 느낀다고 하죠. 이 말은 최고조란 완벽하게 자신이 상상한 대로 창조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계획한대로 풀리는 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죠. 이는 대부분 그의 영화에서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했던 것은 안 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이 자신의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이라고 즐거워하는 엄청난 영화광입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면 다른 구성원들에게 사랑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죠.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도 하나의 개인으로서 원대한 욕망이 있는 사람임을 천명합니다. "남들이 했던 것은 안 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어떤 감독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리더는 조직을 통솔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그도 그 일을 실현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욕망하는 사람입니다. 그 욕망을 어떤 식으로 다른 구성원들도 함께 데려갈 수 있는지가 위에서 언급한 그의 능력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