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브랜드 자체를 인지하지 않습니다.
경험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인지' 하지요.
팝업 전성시대라는 말이 지칠 만도 하지만 후발 브랜드든 앞서 재미를 봤던 브랜드든 여전히 앞다투어 팝업스토어를 내고 있습니다. 이제 팝업스토어를 안 내면 시대에 뒤처지고 후진 브랜드가 될 판이죠. 말은 제주로 보내고 팝업은 성수에 연다고, 2023년 올해는 날이 좋은 봄 이후로 성수동 골목길에만 매주 40여 개 이상의 팝업스토어들이 열고 닫히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대두되는 팝업스토어의 배경이나 부동산 경기나 기업 운영 변화, 세대 성향, 성공 이유들은 그동안 수없이 보고 들으셨을 거고요. 이제 팝업스토어가 명실상부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팝업스토어'에 대해서 다시 톺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더현대는 개점 이후 딱 2년간 열린 팝업스토어가 총 321개에 이릅니다. 더현대의 이 팝업스토어들에 다녀 간 인원만 해도 460만 명으로 서울 시민 둘 중 한 명은 다녀갔다고 매체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더현대의 성공 요인은 책으로도 나올 만큼 많습니다만 어쨌거나 백화점 성공을 가늠한다는 3대 명품인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없이도 성공을 견인한 것에는 처음부터 젊은 세대 타기팅을 확실히 하여 방문 안 하고는 못 배길 팝업스토어들을 유치한 것이 주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는 핫하지만 기존 백화점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마뗑킴, 그레일즈, 쿠어, 디스이즈네버댓과 같은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팝업스토어에 유치했고 BTS, 뉴진스, 슬램덩크에서 다나카까지 다양한 문화 콘텐츠 팝업스토어도 흥행가도를 달렸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유통사들에게 더현대의 모델은 고무적이었습니다. 이후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이나 대구, 부산 등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기존 백화점 형태를 버리고 유행에 날을 세운 큐레이션으로 사람들을 공간에 방문하게 할 수 있는 즉, 팝업스토어에 유리한 공간 형태로 대형 백화점들은 탈바꿈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수동의 골목길은 단지 성수동 주소지에 하나 오픈한 팝업이 아니라 성수동 골목길이라는 도보 가능한, 또 분위기가 유지되는 공통 거리에 있는 공간입니다. 더현대는 그 공간이 치밀하게 계획되어 쾌적하게까지 연출된 물리적인 공동 공간이지요. 성수동 골목길에서는 기대에 부족한 맛없는 패(팝업)가 존재할 수 있지만 더현대 안의 모든 팝업은 계획된 전략의 한 퍼즐이기에 그 확률이 더 떨어집니다. 물론 성수동 길의 바이브를 그 길 팝업의 높은 가산점으로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이쯤 되면 팝업이 브랜드가 안 하면 큰 일 나는 브랜딩이자 마케팅이 된 거 같은데, 성수동이나 더현대에 입성하지 않고서는 또 그 효과가 미미할 거 같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인스타그래머블 하다는 것은 팝업스토어의 가장 중요한 흥행비결처럼 이야기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얼마나 언급되었나를 팝업스토어의 KPI 중 하나로 책정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너무 많은 팝업 사이에서 더 독특하고, 젊은이들의 사진에 꼭 박히고 싶은 콘텐츠에 집중하면서 간혹 본말이 전도되어 보이는 팝업도 눈에 많이 띕니다.
"이를 통해 'MZ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라고 하기에는 그 근거가 미약해보입니다."
지난여름 홍대 상상마당 앞에서 열린 동아오츠카의 '오로나민C Night Out' 팝업 체험존에서는 하하, 스컬, 딕펑스 등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사실 이 상상마당 앞 길은 웬만한 버스킹에도 인파들이 장사진을 이룹니다. 아로나민C를 마시면 피로를 잊고 밤새 잘 노는데 도움이 된다는 물성의 가치와 결부되니 홍대 상상마당 앞 거리에 인파를 세우는 건 효과적인 것일까요? 이미 그 물성의 가치로 그 씬을 장악하고 있는 에너지 음료들이 가득한 건 둘째치고 이를 통해 "MZ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라고 하기에는 그 근거가 미약해 보입니다. 한 번의 팝업 행사를 통해 브랜드 충성도를 가지는 건 불가능하지요. 다만 브랜드 인지의 역할을 자처한다고 하더라도 길거리의 음악 소리라면 어디에도 환호하고 싶어 하는 대상들에게 하하와 스컬의 스카 공연 말고 아로나민C에 대한 '인지'가 다음 날 숙취와 함께 얼마나 남았을지는 의문입니다. 인파가 가득한 보도자료 사진 남기는 일 이상, 브랜드에 남는 것이 희박한 팝업들은 사실 지금도 숱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팝업스토어 하면 많은 사람들이 레퍼런스처럼 언급하는 브랜드의 팝업이 있습니다. 바로 시몬스침대의 그로서리 팝업스토어인데요. 한동안 '침대 없는' 팝업스토어로 이목을 끌었지요. 공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에서 팝업스토어를 연 것은 그 의미에서도 괄목할만하다 생각이 들었지만 지역 식자재는 유럽 풍의 디자인 깡통에 포장되어 지역 문화 요소를 살리는 소셜라이징(Socializing) 의미와는 무색하게 연출되었고, 팝업스토어의 주요 판매원은 디자인 굿즈들로 젊은이들이 쉽게 굿즈를 사들고 나가기 편하게 구성해 두었습니다. 첫 번째 그로서리 스토어에 줄을 세운 시몬스침대는 작년에 청담동 뒷골목에 역시 비슷한 구성(이번에는 식료품조차 없이)의 팝업스토어를 냈고 1년 간 성황리에 매장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천쌀과 부산버거와 독특한 디자인의 문구류와 같은 것들이 시몬스침대의 가치와 철학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요? 그저 'MZ'들이 좋아하는 아이템들을 비비드 한 컬러와 디자인으로 레트로한 이태리의 샤퀴테리 샵을 모형으로 한 공간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MZ들이 가서 사진을 찍고 전리품들을 사들고 나왔고요. 팝업스토어의 다양한 사례 중 하나가 될 순 있겠습니다만 많은 매체에서 소개된 것처럼 전형적인 팝업의 레퍼런스가 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디자인 문구류와 같은 것들이 시몬스침대의 가치와 철학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요?"
시몬스침대는 2022년, 전년 대비 12%의 매출 성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인과 관계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데요. 시몬스침대에서 이와 같은 팝업스토어를 진행한 이유는 "침대는 7~10년 주기로 바꾸는 고관여 제품이라 MZ에게 브랜드의 인식을 잘 시키기 위해서" 라고 했습니다. 2년 사이 매출 증가를 팝업스토어로 인해 '브랜드 인지'가 된 MZ들이 요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오히려 경영 상의 묘가 있었습니다. 앞서 시몬스침대는 매장수를 100여 개나 줄이고 더 좋은 상권에 더 좋은 직영 매장을 소규모로 운영했습니다. 접객도 달라지고 매장에 들어왔을 때 고급스러움과 신뢰도는 달라지겠지요. 가구와 같은 형태의 제품은 매장 경험이 구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면세점에서 다양한 브랜드 제품과 함께 진열된 에어팟과 애플스토어에서 만져보는 에어팟은 왠지 다르지 않나요? "다른 총판 매장 가서 다른 매트리스도 다양하게 한번 누워보고 가격 비교 해보고 올게요." 하기에는 쾌적하고 세련되게 운영되는 직영 매장의 경험은 강렬할 수 밖에요. HONNE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TVC나 샤퀴테리 샵을 표방한 팝업스토어는 확실히 눈길을 끌만 했지만 시몬스에서 말한 대로 구매 사이클이 긴 고관여제품에 어떤 식의 인지가 중요할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쁜 볼펜을 산 그 팝업 스토어의 침대 브랜드를 인지하는 것이 주요할지, 하다못해 수면의 질을 바꿔 줄 '이쁜' 수면 안대를 산 팝업스토어의 침대 브랜드를 인지하는 것이 더 주요할지.
'경험 경제' 라는 책에서는 "재화와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비즈니스를 차별화하는 힘은 경험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험이라는 기억은 인지를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단 경험을 통한 인지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경험을 무기로 한 팝업스토어의 효과는 떨어지겠지요.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브랜드 자체를 인지하지 않습니다. 경험이 주는 가치와 의미를 '인지' 하지요. 그 가치와 의미가 남달를수록, 그리고 내가 그 가치가 필요하다고 떠올렸을 때 그 가치와 브랜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이상적인 일일 겁니다. 그러니 경험에만 집중하고 무엇을(가치를) 어떻게 인지할지 소홀히 하는 기획은 정말 팝업스토어에 무의미한 비용을 쏟는 것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팝업스토어는 이목을 끌어야 하고, 소위 줄을 세워야 합니다. 분명합니다. 샤넬이나 루이비통은 아주 작은 몸짓으로도 이목을 끌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단지 이목만 끌어도 상관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브랜드들은 어떤가요? 이목을 끌기 위해 폭죽은 써야겠고, 그 폭죽을 브랜드 인지로 결부시키자니 폭죽이 약해지고, 브랜드 인지를 강조하자니 기존 광고와 다름없어서 성수동 길 혹은 더현대에서 외면당할 것 같고. 양날의 검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명품 브랜드조차도 그 '이목을 끄는 일'에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이 결착되어 있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이목을 끄는 일에도 브랜드의 가치와 결착되어 있지 않은 일은 없습니다."
지난 6월 루이비통에서는 90년 생 네덜란드 사진작가인 사라 반 라이가 서울의 순간들을 담아 낸 <링크 - 패션아이서울편>을 출간하며 회현동 피크닉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습니다. 루이비통은 1845년 창립 이래 '여행의 예술(Art of travel)'을 브랜드 철학으로 삼고 8년 전부터 촉망받는 패션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각 도시의 여행 사진집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루이비통은 여행 가방을 만드는 곳이지요. 낯선 도시의 면면을 패션 사진을 찍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여행의 가치와 다채로운 여행의 시선에 따라 도시가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루이비통은 적극적으로 소개합니다. 가방과 상관없는 팝업스토어로요. 그래야 여행이 가치 있고 그 가치 있는 여행의 화룡정점에 루이비통 가방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여행하면, 루이비통을 (인지)떠올리는 겁니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할 때 명품 브랜드라고 '뽀대'에만 집중하거나, 오래됐지만 견실한 기업들은 (주로 레트로로)'이목 집중'에만 매진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존 매장의 기능이 소멸되고 있기에 작금의 팝업스토어 붐이 성행할 텐데요. 물건을 '재차' 구매하러 오게 하는 매장의 기능을 팝업스토어로 촉발시키고 n차 구매를 팝업스토어를 통해 n차 경험으로나마 대체하자는 게 지금 팝업스토어들의 보편적인 구현 방식입니다. n차 경험은 FOMO(Fear of Missing Out) 즉, 소비자들이 한정판을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요.
팝업스토어는 브랜딩을 목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매출 활로를 여는 시발점으로 구현할 수도 있습니다. 허나 대부분의 브랜드는 전자의 기능으로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지요. 전자의 목적이라면 브랜드의 가치에 결부되는 '경험'을 인지할 수 있도록 기획하길 바랍니다. 후자라면 팝업스토어는 재구매의 초석을 쌓는 스킨십이 벌어지는 공간입니다.
올해 1월 더현대에서 열린 더잠이라는 여성 속옷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는 팝업 기간 동안 1억의 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맞춤 속옷의 특성상 재구매로 이어지기 쉬울진 몰라도 첫 구매는 어려운 바로 그 숙제를 이 팝업스토어를 통해 풀어냈지요. 집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내 잠옷과 속옷을 꺼내 입는 것을 테마로 팝업을 연출했는데요. 각 구획에서 더잠이 생각하는 '편안함'에 대한 철학을 전달하거나, 맞춤 속옷을 안내받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제품을 자기 옷장처럼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매장에서는 당장 지속적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컨설턴트와 함께 맞춤 속옷을 입어 볼 수 있는 멋진 드레스룸이 있습니다.
팝업스토어가 온통 웨스 앤더슨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이미지로만 도배되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됩니다만 방문객들이 인스타그램에 남기게 될 이미지가 브랜드 인지와 연결되는 이미지가 맞나요? 그 멋진 공간과 굿즈들 안에서의 '경험'을 각인시키고 싶은 거잖아요? 팝업은 일반 매장과 확연히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브랜드의 가치 경험일 수도 있고, 제품의 고차원적인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부디 팝업스토어라는 아찔한 노동집약적 메소드를 쉽게 휘발될 그것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