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알아요. 당신의 회사가 바라는 건 컨설팅이 아니라는 거.
단지 컨설팅을 바라는 게 아니죠. 변화를 바라는 겁니다.
예전에 맥킨지로부터 몇 억씩 하는 컨설팅을 받은 회사와 미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이전에 다른 컨설팅 펌으로부터 비싼 컨설팅을 받은 회사들이 다시 또 저와 같은 외부 컨설턴트와 미팅을 하는 경우는 많았죠. 하나같이 반신반의 자세로 저 또는 제가 소속된 회사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고 싶어하며 논의를 진행합니다. 제가 만난 어떤 조직의 대표나 담당자도 단지 컨설팅 자체를 바랐던 적은 없습니다. 그들은 요컨대 이걸 원했죠.
변화
매출을 일으키거나 소비자 인식을 바꾸거나 심각한 경쟁 관계를 타개하는 등 사업에서 어떠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필요한 건 어떻게든 문제를 빠져나오는 게 아닙니다. 일련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부분 스스로 즉, 조직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경영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단 처자식 빼고 싹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선례 때문은 아닙니다. 당시 삼성도 그러지 않고선 다가오는 거대한 글로벌의 물결에 휩쓸려 버린다는 것을 직감했을 뿐이죠.
조직이 변화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변화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어떤 내부 개선이 필요하고 어떤 외부 활동이 필요한지 대부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의 힘으로는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외부의 전문가 또는 전문가 집단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많은 회사들이 컨설팅을 신뢰하지 않거나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설팅 펌을 찾는 모순된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요.
기업이라는 조직은 그렇게 쉽게 변화하기 어렵습니다. 기업도 유기 조직이라면 유기체는 결국 안정된 상태를 지향하기 마련입니다. 안정은 편하고 변화는 불편합니다. 물론 개인이라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은 일정 이상의 부를 이루면 불로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큰 이변이 없다면 안정된 노후를 편안하게 유지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 안정이 조직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기업인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연 기관만을 고집하는 모빌 기업은 이제 곧 사라지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뒤안길로 갈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구글마저 선뜻 다가온 인공지능의 시장에서 어떻게 흔들릴지(또는 변화할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시장은 기업보다 더 빠르게 변화합니다. 환경이 변하든, 경쟁사가 변화하든, 소비자가 진화하든 시간이 갈수록 시장의 변화 속도는 빨라집니다. 변화의 가속도도 높아져서 지금 시점에 십여 년 전의 변화 추이를 상정해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할 정도지요. 인류의 5천 년 축적 데이터의 양은 지금 단 하루만에 생산됩니다. 지난 몇 년 간의 세상의 변화가 그 전 50년 간의 세상의 변화보다도 더 컸습니다.
변화의 환경 속에서 변화를 어떻게 마주하는가는 진화론의 핵심이죠. 흔히 거부, 수용, 창조의 3가지로 분류합니다만 수용은 행하는 결에 따라 다시 두 가지로 세분화해봤습니다. 여기 변화를 마주하는 4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관습, 관행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안정이 편하니까요. 그런 사람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그런 습성이 있는 거지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람은 사뭇 비슷해 보이지만 변화에 끌려가는 사람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행,불행의 차이가 뒤따릅니다. 생존을 위해 마지못해 습관을 버려야 하는 사람은 오랜 시간 고통과 인내로 점철될테고요.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변화 속에서 자신의 방법론을 찾을 확률이 높습니다. 즉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정 기간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네 번째,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부류는 설명이 필요 없겠죠.
"변화를 받아들이는 기업은 때에 따라서 변화에 끌려가는 기업이 낼 수 있는 성공과는 비할 바 없는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이 4가지 부류의 사람을 그대로 기업에 한번 적용해보세요. 아마 각 부류에 해당하는 기업이 한 두 개씩은 떠오를 겁니다. 먼저,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업은 안정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선택된 조직이나 기업들이 많습니다. 공적 자원을 다루거나 사회적 기준을 다루는 일들에 연루된 기업이 그러하지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조직이 변화를 거부한 채로 생존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사실상 경쟁 시장에서는 두 번째, 변화에 끌려가는 기업과 세 번째, 변화를 받아들이는 기업이 주를 이룹니다. 변화를 만드는 기업은 극히 드물지요. 그런데 각 분류의 기업들이 차지하는 시장의 포션은 예상과 다른 순서대로 형성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첫 번째 순으로 말이죠.
애플은 처음부터 변화를 만드는 기업인데 1위 기업이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당시는 퍼스널 컴퓨터라는 시장이 새로이 형성되고 있던 시대입니다. 당시 경쟁 기업들 대부분이 애플과 마찬가지로 혁명 집단들이었지요. 반면 카테고리가 이미 시장에 보편화된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당연히 애플도 처음엔 1위 기업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1위 기업이 되었기에 변화를 끌고 가는 후변의 섭리도 있겠구요(물론 애플의 혁신성은 더 면밀하게 설명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같은 변화의 수용이더라도 변화에 끌려가는 기업이 오히려 매출이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카테고리가 시장에서 안정화된 뒤 가장 진화된 형태의 제품을 낼 확률이 높거든요. 그럼에도 이런 기업들은 따라가는 변화의 지점을 놓칠 경우 쉽게 시장에서 몰락하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인 후 적용하거나 그것을 넘어 변화를 제시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은 내실이 더 단단하고 진화에도 유리합니다. 설령 상품이 역사의 뒤로 사라져도 브랜드는 굳건하게 성장을 이어가지요. 때에 따라서는 변화에 끌려가는 기업이 낼 수 있는 성공과는 비할 바 없는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변화를 만들어내는 두 개의 케이스는 제외하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세계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케이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먼저 변화에 끌려가는 기업입니다. 변화에 끌려가더라도 매출만 좋다면야 나쁘지 않은 거 아닙니까? 기업은 이윤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변화에 끌려가는' 뜨뜨미지근한 포지션이야 포장하기 나름이니 그것 역시 문제 될 게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지난 십년 전 아니 2년 전과도 다릅니다. 변화에 끌려가는 기업은 변화를 추적 매수하는 그 한번의 타이밍만 놓치더라도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그 변화가 십년에 한 번 꼴로 존재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변화는 상시적인 환경입니다. 변화는 싯타르트에 나오는 냇물과도 같이 그냥 계속 흘러가는 거지 갑자기 여기서부터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이러면서 열리는 게 아니죠. 단지 그 물살이 빨라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환골탈태는 못 하더라도 변화에 익숙한 조직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기 십상입니다.
변화에 끌려가는 기업은 이런 공통점이 있더군요. 그들은 대중이 이런 걸 원해서 시장에 상품을 내놓는다고 합니다. 앞서 성공한 특정 상품을 모델로 큰 이점 없이 기존 자신들의 시장 장악력만을 바탕으로 제품을 내놓습니다. 왜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집중합니다. 매스 마케팅에 집중합니다. 소비자가 아닌 인플루언서의 입을 통해 제품 성능을 반증합니다. 그래도 이러한 외부 활동은 매출에 순기능을 하기도 하니 상황에 따라선 잘못된 선택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부가 문제지요. 목표는 있을지언정 목적은 쉽게 공유되지 못 합니다. 부서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합니다. 목적을 설명하는 사람과 실행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거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 합니다. 각자의 역할은 목표에서 그만 한정됩니다. 좋은 브랜딩 회사나 컨설팅 펌으로부터 받은 지침은 사장님의 서랍 속에서 사장됩니다. 브랜드가 아니라 출시하는 상품에만 집중합니다. 안타까운 건 좋은 브랜드 컨셉이 있는데 오래된 가보처럼 먼지만 쌓아 놓는다거나 경쟁력있는 제품이 틀림없는데도 소비자가 아닌 제품 부각에만 집중된 각양각색의 마케팅으로 인해 응당 빛 나야할 브랜드에서 잉태된 상품이 그만큼 빛을 보지 못 할 때입니다.
"목표는 상사가 확인하면 되지만 목적은 단지 상사라고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변화를 받아들이는 기업은 이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제품의 소비자 문제해결 지점이 분명합니다. 그런 이유로 '왜'에 대해서도 좀 더 분명하지요. '왜'에 집중하면 브랜드를 부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만든 사람이 누군지를 밝히지 않고 '왜'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죠. 상품이 아닌 시장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이유로 소비자 이해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한편 내부에선 목적에 부합되는 일인지 서로 확인합니다. 이걸 엄정하게 확인하는 담당자를 따로 두기도 하지요. 목표는 상사가 확인하면 되는 숫자지만 목적은 단지 상사라고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여야 할 변화를 목적에 상속된 일로 보고 변화 초기의 진통을 감내합니다. 또는 미리 책정합니다.
어디 경영 기술서나 마케팅 방법론에 있는 나쁜 점과 좋은 점을 대비해 놓은 것 같은 소립니다. 그런데 그게 제가 보고 경험한 그대로의 팩트입니다.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나고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요?(바꿀 생각이 있다면 말입니다.)
조직은 개인보다 변화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기란 부단한 훈련을 통해서 이룰 수 있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조직이 되는 건 제가 본 바로는 정말 어렵습니다. 단호한 결의가 필요합니다. 조직의 대표만 가져서도 안 되고 특정 구성원만 가져서도 안 됩니다.
먼저 변화라는 개념의 오해부터 제거해야 할 겁니다. 변화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변화무쌍한 대응이 핵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하지 않는 것을 먼저 결정하는 것이 변화하는 체질로 변하기 위한 첫번째 일입니다. 기업과 조직에서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겁니까? 기업의 존재 목적입니다. 사명, 목적 강령, 미션 스테이트먼트... 여러가지 이름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네, 여러분 회사 어딘가에 걸려 있거나 사칙 어딘가 아마도 앞 쪽에 적혀 있을 겁니다. 그걸 모두가 이해하고 현실 가능한 일이라고 믿게 해야 합니다. 모두가 믿지 않거나, 현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러한 목적으로 구체화해야 합니다. 그 목적 아래 구성원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남사스러워서 구성원들이 회사의 목적을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힘든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분기 매출 같은 건 분명한 목표로 해야 할 일도 분명한 명제죠. 조직의 구성원들이 목표는 알지만 목적은 희미한 이윱니다. 기업의 목적은 너무 먼 테제와 같아서 "그래, 설립자가 좋은 일 하려고 이 사업 하자는 거 나도 이해한다고." 이러고 말면 무용지물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목적이 공유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각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고 있다면 그건 목적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조직의 수장이 이 일에 힘을 실어야 합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 일을 수행하게끔 칼자루를 쥐어줘야 합니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뒤이어 해야할 99가지의 일은 차지하고, 조직이 이 일을 간과한다면 '이노베이션'이니 '시대적 사명'이니 '과감한 추진'이니 이런 허울 좋은 타이틀의 일을 시도하면서 자원을 태우는 일은 부디 삼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멋진 붓글씨로 한번 잘 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목적의 구체적인 확립과 공유, 그리고 재확인, 재생산, 목적의 고도화, 기업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즉, 변하지 않는 목적을 바탕으로 변화의 당위, 변할 수 있는 범위, 변화의 득과 실, 변화의 실행력을 가져가야 합니다.
"그 목적이 공유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각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고 있다면 그건 목적이 아닙니다 ."
만약 외부 전문가를 들인다면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전문가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을 꾸미시길 바랍니다. 수억 원 하는 컨설팅 페이퍼가 그야말로 종이조각이 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테죠. 얼마나 삐까번쩍한 답안지를 주나 보자 하고 있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중요한 건 삐까번쩍한 전략이 아니라 그걸 내부에서 실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니까요. 연례행사인 워렌 버핏과의 점심 식사가 작년에는 19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고 하죠? 심지어 버핏 자신의 미래 투자 계획도 알려주지 않는 이 점심 식사 자리에 246억이나 되는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뭘 듣던 그걸 행할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에 그 돈을 지불하는 걸 겁니다. 당신이 외부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을 요량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워렌 버핏이 아니라면, 내부에서 적용 가능한 방법도 함께 구상해달라고 요청하세요. 아마 그러기 위해선 한 팀이 되어야 할 겁니다.
어릴 적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발명하거나, 세상을 바꾸거나,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기업도 처음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세상의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설립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세상의 무언가를 바꾸지는 못 하더라도, 자신을 확실히 세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세상을 계속 만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은 바꾸려고 하는 것 또는 세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방법은 개인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확실히 자신을 세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세상을 계속 만나는 겁니다. 그것이 변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일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아, 그런 세상에 일조할 생각이 없어도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변화하지 못하면 생존하지도 못 할 테니까요.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