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완벽한 팀원과 역량을 갖추고 있더라도 일은 어딘가에서 삐끗할 수 있고, 그 일은 안타깝게도 필히 발생하고야 맙니다. 고객사가 되었건 다른 팀 또는 상부가 되었건 사과는 미덕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잘 수행해 내는 중요한 기술이죠. 고개 숙이는 것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고가 벌어졌을 때 잘 매듭짓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입니다.
사과는 적절한 타이밍, 이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순간에 해야 하고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죠. 다만 적절한 타이밍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너무 늦게 하면 사면초과로 사과 말고는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없을 때 내민 수가 되어 버려 사과의 뜻이 무색해져 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이른 사과는 자칫 가벼워 보이거나 문제를 정확히 수습하기보다는 면피가 우선인 것처럼 보이기도 쉽지요.
1. 나의 또는 팀원의 실수로 문제 또는 사고가 벌어졌다.
2. 되돌릴 수 없는 일이고, 숨기는 것은 미래의 눈덩이와 다름없습니다.
3. 수습할 방법을 정리했다.
세 가지 일을 인지했다면 그때가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3번은 수습할 대안이 당장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대안을 계속해서 찾다가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죠. 대안이 당장 떠오르지 않으면 그때는 수습할 방법이 정리되지 않더라도 사과를 먼저 해야 합니다. 이때는 더 나은 혜안을 찾고자 상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그나마 진실함이라도 보여줄 수 있는 방안입니다.
물론, 대안 없는 사과는 아무래도 난감합니다. 일에서의 사과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안을 가지고 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대안이 '당장' 떠오르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문제 파악이 정확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고고 완벽히 되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문제가 파악되었다면 대안을 끄집어 내는 건, 즉 차선을 선택하는 건 사실 논리적인 일입니다.
둘째, 이 일의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선을 선택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해를 보아야만 하는데 본인이 책임자가 아니라면 손해 보는 일을 선택하는 대안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과는 조직에서 실수 당사자가 아닌 책임자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책임자의 사과의 방법입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책임자들의 이러한 사과의 형식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사과가 참 안 좋은 사과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자는 저 말에서 책임을 팀원과 실수를 한 당사자에게 돌리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사과의 조건은 이렇습니다.
1. 책임자는 먼저 실수의 전후 상황과 문제의 깊이와 여파를 정확히, 아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2. 실수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상황으로 전가하는 말은 삼갑니다.
3. 실수한 대상이 아니라 문제에 집중해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마치 본인이 실수를 저지른 현장의 당사자처럼요.
4. 대안을 설득하고 어떻게 이 일이 재발하지 않을지 설명합니다.
사과를 할 때 흔히 보이는 태도는 문제 발생에 다른 변수들의 영향을 언급하며 "다만 저희 잘못은 인정하나..." 식의 변명입니다. 그 변수들은 재발 방지책에서 준비해야 할 조건으로 설명되어야지 사과의 담백함에 얹어져서는 안 될 사족입니다.
전 사실 진심 따위 관심 없습니다. 다짜고짜 고개만 숙이는 게 얼마나 신뢰가 가지 않느냐면, 듣는 입장에서는 그 실수를 기어코 또다시 저지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책임자가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그래서 재발 예방이 신빙성이 떨어져 보이게 되죠.
실수가 실력이 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본인이 실수를 저지른 사람만큼 전후 상황과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해 대안을 약속하고 또 실행할 수 있을 때뿐입니다.
이제 사과의 매듭을 다 지은 것 같지만 사과를 끝내고 팀으로 돌아왔을 때야말로 진짜 매듭짓기의 과정이 따릅니다. 내부로 돌아와 해당 팀원이나 다른 팀원들에게 "내가 너 때문에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알아?",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겠냐." 식으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랑을 섞어 다시 한번 해당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꾸중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이어지는 것을 여러분도 많이 겪거나 목격했을 겁니다.
실수한 당사자가 실수의 상황에 매몰되길 바라나요? 아니면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에 매진하길 바라나요?
책임의 마무리는 매듭지은 일을 자찬하거나 꾸중이 아니라 함구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수한 당사자나 팀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너무 멋이 없어요. 멋이 없는 리더는 일도 일이지만 참 볼품 없습니다. 그것이 팀원이 됐건, 운용하는 에이전시가 되었건 리더가 그 실수를 다시 언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팀원이나 에이전시는 리더에게 더 큰 신뢰를 되돌려주고자 노력할 겁니다. 수차례 직접 목도한 일이니 믿으셔도 되겠습니다.
실무자일 때도 사과의 방식은 책임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과는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피하기 힘든 과정입니다. 사과를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면 관계나 감정적으로도 또 프로젝트의 실리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