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난의 희열
2026년 11월04일2. 조롱예찬
혐오와 조롱의 문화는 이제 하루이틀의 문제도 아니게 되었습니다만 저는 그 문제를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가 무섭습니다. 저는 말하자면, 인류는 스카이넷에 멸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존엄과 인격을 잃으며 멸망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쪽입니다. '비난의 희열'에서 말했듯이, 이제 비난(혐오)과 조롱은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유의미한 의사 표현이 된 듯합니다.
저는 과거에 <개그콘서트>를 참 싫어했습니다. <무한도전>에 한 번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개그콘서트>는 싫어하기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사람들과 쉽게 융화되기는 어려운 인간이었죠. 과거의 <개그콘서트>는 못 생기거나 뚱뚱한 신체를 폭력적으로 조롱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주로 여성의 신체를 소재로 삼는 경우가 다수였죠) 꽁트들이 많았습니다. 일요일 오후, 온 가족의 유일한 주말 나들이로 겨우 대형 마트에서 장을 봐 와서는 저녁 시간, 가족 구성원이 모두 둘러앉아 <개그콘서트>를 보며 다가올 월요일의 고단함을 잠시 망각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면 저는 늘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은 그렇다 치고, 어떤 아이들은 거기에서 보는 혐오와 조롱을 언젠가 학교에서 시행해 보게 되지 않을까 불편했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웃고 떠들었던 소재인데 이것이 악일 리 없으리라, 나아가 규범에 어긋날 리 없을 행위였죠. 더 과거에는 '사회 비판' 또는 '해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말 그런 용도로 웃기는 개그 소재도 많았고, 지금은 사회 정서상 노골적인 신체 조롱 소재는 경감되었습니다만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치솟은 소득과 가시적 가치에 대한 팽창의 시기에 개그의 소재는 일차원적인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쪽으로 구성되곤 했습니다.
유난스러운 '불편러'의 기우였을까요? 이제 어디서나 댓글에서 사람들이 자기 의견이란답시고, "생긴 거 보니 답 나온다.", "관상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쉽게 봅니다. 과거 대중문화가 어떤 식으로 조롱을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웃음으로 학습시켰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논리적인 토론을 해야 하는 국면에서도 상대보다 빠르게 우위에 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게 겨우 외모에 대해서라니 안타까울 따름이죠. 물론 사회적 자아가 드러나는 자리와 위치에서 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 일차원적인 조롱은 또 다른 심리적 탈출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화면 뒤 키보드를 데우게 됐습니다.
지금은 세상 모든 것들이 조롱할 대상인 것 같습니다. 조롱의 대상은 앞서 비난의 대상으로 언급했던 (MZ와 같은) 무리와 (이민자와 같은) 집단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애플을 여전히 신봉하는 자들, 한정선에 3시간 줄 서는 사람들, 특정 유명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 유명인을 싫어하는 사람들, LGBTQ인 사람들, 그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페미니스트, 특정 취미를 가진 사람들, 특정 영화를 좋아하거나 특정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정치적 조롱은 너무 편협하여 입에 담기도 싫습니다. 그러다 급기야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같은 전방위적인 대상까지 번지더니 이제 그냥 생리학적 남자, 생리학적 여자로, 0 아니면 1 식으로 인류의 반을 조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질학적으로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생리학적으로 남자면, 생리학적으로 여자면 '그러그러하다'라고 수월하게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속이 시원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조롱은 비난과 달리 '잘하면 잘할수록' 칭송받는 기이한 상황까지 나타납니다. 레딧의 베스트 댓글은 누가 더 수준 높은 농담을 잘했는가, 누가 더 정곡을 찌르는 통찰의 말을 했는가로 선호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인격을 폄하하는 것으로는 높은 수준의 농담이나 정곡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 기발한 통찰력을 발휘하려 안간힘을 쓰는 댓글들이 많습니다. 반면 한국 콘텐츠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누가 더 고도로 조롱했는가'로 판가름 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쩜 이렇게 기발하게 잘 깠지?' 하며 감탄하며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걸까요.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분출하고 싶은 화를 많이 내재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돌아보게도 합니다.
앞뒤 없는 조롱은 비난보다도 극악합니다. 조롱은 그 대상과 그 대상의 행태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그 주요 목적입니다. 과거 권력자에게 물리적, 정신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때 '우리끼리' 그를 조롱하여 웃기라도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죠. 저잣거리의 탈춤이 대표적입니다. 지금의 조롱은 다릅니다. 그 대상을 '실제로' 파괴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 대상이 더 이상 우리가 감히 손댈 수도 없는 그런 권력자 같은 것도 아니죠. 그냥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웃음거리가 된 대상은 조롱의 무대에서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조롱을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하나의 희극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나 조롱받는 사람과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더 이상 객관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어집니다. 저걸 비웃을 일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제 나는 조롱의 대상에 동조해 버린, 마찬가지로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이 조롱에는 기가 막힌 탈출구가 있습니다. "웃자고 한 건데 뭘 그리 심각하게 구냐"는 겁니다. 그러면 조롱한 사람도 동조한 사람도 다 허허하고 넘어갈 면죄부가 성립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아니, 스스로를 쿨한 사람들로 사면하면서 동시에 조롱한 대상을 '진지 빠는 @찐따'로 한 번 더 격하시킬 수 있는 기회마저 얻지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 형태의 사과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편했다면 사과할게."이고 나머지 하나가 "웃자고 한 건데."입니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타자화인지도 모르고 자라난 아이가 있다면 분명 부모에게 큰 잘못이 있는 겁니다.
얼마 전, SNS에서 씨네필을 기가 막히게 잘 조롱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연기에 저도 감탄을 하면서 봤습니다. 그 사람이 영화를 심도 깊게 고민하고 그 문화를 뼛속까지 체험해 봤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보다도 저는 거기 달린 댓글들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게 있었는데 그걸 뽑아내 준' 크리에이터에게 찬사함은 물론, 그걸 알아볼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의 눈높이 역시 다른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 피력하는, 그러니까 더 높은 수준의 디테일한 조롱을 알아본 스스로에게 자아도취되어 자신을 피력하는 댓글이 다수 보였습니다. "그들(씨네필)의 수준 높은 취향을 조롱하는 게 아니고, 그들의 꺼드럭거림을 조롱하는 거야."라고 항의하고 싶겠지만, 말했다시피 그 대상를 조롱해 버리는 순간 그 대상의, 그 행위의 장점과 가치마저 고스란히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고, 하여 부패하게 됩니다.
제가 어릴 때 사랑했던, 그리고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수많은 선구자들과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결핍된 자들이었고, 자신이 선호하는 것이 준거집단의 그것과 현격하게 차이가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나오는 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인류 역사에서 조롱이나 왕따가 없었던 시절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것은 그들이 다른 것을 선택한 것에 대해 그저 짊어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그 짐이 지금은 주홍글씨가 되었습니다. 씨네필인 척하면 안 되고, 친구들 앞에서는 프랑스 작가의 소설 커버 같은 거는 내비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과거에는 차고에 틀어박혀 코드를 짜고, 변두리 클럽에서 공연을 하면서 내 길 가면 됐지만 지금은 초밀접 사회입니다. 주홍글씨를 이마에 박고 자기 주관을 고수하면서 살기란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아무런 높은 수준의, 또는 다른 결의 문화는 이 땅에 살아남지 못하는 그런 세계에 살게 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씨네필이었던 봉준호는 이 땅에 다시 나오기 힘들지도요.
이처럼 지금의 조롱 문화는 '생각 없어 보이는 무리들에 대한 타당한'(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비웃음이라고 착각하는 조롱이 있는가 하면, 진짜 문제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조롱에 있습니다. (기껏) 내가 아는, 내가 살면서 마주해 본 몇몇의 삶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그 행위를 조롱하는 것. 비난과 마찬가지로 그럼으로써 내 관념과 세계를 더 견고하게 지킬 수 있다는 착각에 불과하며, 그 찰나의 조롱으로 우월감이라도 획득해 보고자 하는 측은한 몸부림에 다름없습니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그토록 협소하고 저급한 문화만을 유일한 문화로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해 주세요.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