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의 AI 사용은 그저 MBTI나 운세 같은 걸 물어보는 수준에서 이제 확실히 더 진화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나 AI와 하는 심리 상담이나 자기 계발에 관한 분석은 꽤나 수준 높고 논리적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다루는 주제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이후로 세계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더 심화되었고 관계(인종이든 성별이든 세대든) 갈등은 더 깊어졌습니다. 인생의 선배한테는 물어보고 싶지 않아도 AI에게는 편하게 말합니다. 개인 심리 상담가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깊은 비밀을 AI에게 말하는 것이 쉽기도 했죠.
AI는 매일매일 고도화되어 가지만 반대로 이를 쓰는 사람들은 AI의 습성에 피로를 느끼기도 합니다. 감정 문제에 있어서 AI가 가지는 모순 즉, 인정하고 공감하고 긍정적으로 추진하겠금 하는 속성이 책임 없는 조언과 형식적인 공감으로 출력되면서 사용자는 배신감을 느낀곤 하죠. 구조적 모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화형 AI는 당연히 대중적인 호감을 토대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관한 보편적 공감을 사용의 주요 보상으로 추구하게 되어 있죠. 다만 그 공감과 인정이 책임 없고 형식적으로 느껴질 때엔 유대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AI의 이런 필요 이상의 친절과 공감은 밈이 되어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죠.
심리적, 감정적 문제에 있어 우리는 조용히 자기 안을 들여다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쩌면 기회가 박탈되었다고 해야겠죠. 과거에는 하다못해 심심해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을진 몰라도 지금은 과감하고 집요한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그런 기회는 가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수많은 자기 계발 전문가들의 조언과 심리 문제를 타파할 방법론들이 폭포처럼 쏟아지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많은 수의 조언에 피로감을 느낍니다. 조언들이 무감해지면 그저 도파민을 추구하는 에고로 도피하며 괴로움의 순간을 또 넘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기 공감을 타인에게, 또 AI에게 과도하게 의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자기 공감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알기도 하지만 가장 모르기도 한 게 인간이니까요. 준거집단의 가치관과 사회적 자아를 형성한 그 세계의 기준에 따라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박하게 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관계를 원하는 만큼 성취하지 못해서, 얼만큼 성공하지 못해서, 어떤 몸매를 가지지 못해서... 고착된 관념을 깨고 자신에게 공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 공감은 이 시대에 참 어려운 과제가 되었습니다. 어려우니 의탁하려 하는 것이겠지요.
미디어의 진화에 따라 반대로 인간의 자기 인식과 자기 공감은 퇴화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의식 부하나 자만감과는 다르겠지요. 우리는 의도적으로 자기 공감을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AI에게 물어보고 싶은 유혹도 접고, 어딘가에 적혀 있을지도 모르는 정답을 찾아 자기계발서를 끝없이 찾아보는 것도 멈추고, 조용히 오랫동안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일.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니체의 이 말은 자기 안의 괴물과 싸움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저는 이 말을 다른 의미로 좋아합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심연을 직시하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데까지 파고들어 자신을 아는 것, 하여 정의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것만큼 중요한 자기계발이 있을까요.
모두에게 적당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저는 글쓰기로 그 심연에 닿곤 합니다. 제가 노트에 쓰는 글에는 부끄럽게도 주로 자기 비난과 후회, 원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집요하게 펜을 잡고 있으면 어느새 용서와 공감의 단계로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물론 늘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명상이나 산책이 더 주요한 문이 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무엇이 됐든 자신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통로가 길겠지만 인내하고 문을 찾아 들어가면 챗지피티 놈이 주는 위로와는 다른 차원의 위로를 가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모든 심리적 문제를 혼자서 심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리적 절벽에 다다랐다고 판단된다면 전문 기관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를 바랍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