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흑백요리사2의 최종화를 보셨나요? 미리 스포된 결과 때문에 흥이 많이 상쇄됐다고 하지만 최종 테이블에서 최강록 셰프가 빨간 뚜껑 소주를 올린 걸 보는 순간, 이제 클라이맥스가 고조됨을 직감할 수 있었는데요. 최강록 셰프는 빨뚜를 "페어링 때문에 가져온 건 아니"라고 하죠. 그때쯤엔 이미 서사로 모두 넉다운시키겠구나 싶었습니다.(저는 마셰코 때부터 오래된 최강록 셰프님의 팬이랍니다)
흑백요리사는 유독 출연진들의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시청자들은 처음엔 요리에 현혹되어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디렉팅은 요리사에게 맞추어져 있었죠. 그 덕에 시리즈는 초반부터 각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과격할 정도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요즘 세상의 나락 치트키에 해당하는 '인성 논란'은 모든 회차마다 실시간으로 각 캐릭터들에 붙여서 온갖 숏츠와 릴스로 생산되며 입방아에 올리기 딱 좋은 먹잇거리로 확산되었죠.
악플과 비난은 온갖 면에서 다 나옵니다. 김희은 셰프의 화장법에 관한 비난부터, 선재스님의 비빔밥에 들어간 간장이 현대백화점 식품관에서 사 온 십만 원이 넘어가는 간장이었다는 불만은 물론 성비와 다양성을 위한 끼어 맞추기식 부활이라는 주장까지. 다른 참가자의 식자재, 특히나 파인다이닝 쪽의 식자재 가격들과 비교하자면 어처구니없는 이중잣대임에도 '내 입으로 내 불만 말하겠다는데' 식의 비난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리얼 예능에서 꼭 나오는 한국의 그토록이나 중요한 정서인 '겸손'은 태도 논란의 핵심 기준이 되곤 합니다. 요리괴물(이하성 셰프)님이 상대를 무시하고, 자만심으로 꼴 보기 싫다는 아니, 아예 시즌2에서 그 역할이 애매했던 빌런의 자리에 확고하게 앉혀 놓는 반응들이 무수했는데요. 남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사람과 자신에게 계속 확신을 새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은 다르겠죠. 오히려 제 눈엔 요리괴물의 '이겨야죠', '이길 겁니다', '이겨야 합니다'와 같은 말의 반복은 아직 계속 성장하고 도전하고 있는 나약한 자신에게 하는 다그침으로 보였습니다. 한번 반추해 보세요. 각 대결(특히나 패배한 대결)이 끝나고 하는 인터뷰임에도 한결같이 "이길 거라고 확신합니다."와 같은 멘트를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우리는 편집으로인해 성패가 판가름나는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보고 있다고 인지하고 있음에도 자꾸만 이 덫에 빠집니다.
임성근 셰프님은 이번 시즌에서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한 분 중 한 분이신데요. 이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보며 저는 쉽게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임성근 셰프님의 매력은 저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지금의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이 그렇게나 싫어하는 기성세대의 그것을 외적으로는 다 갖춘 사람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결과론적인 실력으로 그런 중년 이미지의 속성을 희화화할 수 있는 대중이 저는 뭐랄까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팀 과제에서 그런 식으로 자기 주장을 하고,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라 일단 나 믿고 따라오라고 하는 사람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보통 어떻게 평가했던가요.
아마도 젊은 세대들이 싫어하는 특정 중년 세대와 임성근 님의 다른 점은 권력 관계의 부재에 있다고 보입니다. 임성근 셰프님은 참가자 중 한 명일 뿐이고, 그래서 시청자들이나 다른 참가자들로 하여금 권력(여기서는 나이겠죠)에 대한 선제적 거부가 적습니다. 사회에서 정말로 임성근 님과 마찬가지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배들임에도 단지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싸잡아 비난하거나 거부한다면 그것이 정당할까요? 임성근님을 찬양하는 사람들 중 그를 사회에서 만났다면, 실력 여부와는 상관 없이 그를 부정했을 많은 이들이 그려집니다. 이는 주로 조롱을 기반으로 언급되는 영포티나, MZ와 같은 세대 갈등 화두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20대 여자를 탐하는' 40대 남성이나, '타인에 안하무인인' 20대가 그 세대를 전부 대표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이분법으로 이야기하는 유혹에 쉽게 동의하곤 합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호감은 인간의 당연한 속성입니다. 50만 원짜리 파인다이닝 요리가 아닌 2만 원짜리 음식을 5분 만에 맛있게 낼 수 있는 것에 쾌감과 동의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어)동의할 수 있는 영역에 있다고 모순된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반대로 자신이 모르고 있는 영역이라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성숙한 생각은 아닙니다.
임성근 님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임성근, 이하성과 같은 사람을 우리가 사회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기껏 '저급하게 퍼뜨려진 SNS의 댓글'과 같은 기준에 흐려질 것이 아니라 말이죠. 유독 우리 문화에서는 이런 신성불가침의 영역에서 칭송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재석, 김연아, 오은영, (한때의)백종원과 같은... 요즘은 시간이 지나서 구설수조차 팩트가 뒤집히는 경우도 있으니 '일단 중립 박겠다'는 시쳇말도 나오지만, 그러면 중립은 법적 판단이 나오면 그때 기어 넣을 건가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판단하는 근거와 기준은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기준이 피상적이거나 결과론적인 근거여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고요. 피상의 안쪽을 들여다보려면 잘 모르는 영역을, 그리고 내가 그동안 믿고 있지 않았던 영역에 발을 디뎌보겠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쓰다보니 청학동 같은 얘기가 되었지만,
때로는 척이 되거나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요리사에게 가장 필요한 재료인 자존심을 가지고 자신의 요리를 하는 모든 요리사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매일 같은 일을 하는 것 뿐인' 최강록 셰프님도 대미의 서사적 희열을 완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