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워즈 에피소드 1편, '보이지 않는 위협'에서 영화의 말미에 제다이 마스터인 콰이곤과 오비완이 시스 군주인 다스몰과 결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다스몰은 제다이 마스터 둘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죠. 오비완이 아래층으로 떨어져 잠시 결투는 콰이곤과 다스몰의 1대1로 벌어집니다. 박빙의 승부를 보이던 둘은 좁은 통로로 접어드는데, 통로에는 레이저 막이 간헐적으로 켜지면서 둘 사이, 그리고 따라오는 오비완을 가로막습니다. 숨막히는 혈투를 벌이고 있던 콰이곤과 다스몰은 투명한 레이저 막을 사이에 두고 하릴없이 수 초를 대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때 콰이곤은 무릎을 꿇은 자세를 취하고 명상에 접어들죠. 다스몰은 아직 아드레날린이 튀어오르는지 레이저 막 앞에서 서성이며 콰이곤을 뚫어져라 노려봅니다. 다시 수 초 후 둘 사이를 가로막던 장막이 열리고 콰이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스몰을 향해 라이트 세이버를 휘두릅니다.
숨 막히는 결전을 벌이고 있는 도중에 생긴 단지 몇 초간의 시간에 바닥에 앉아 명상에 접어드는 콰이곤의 모습은 오래동안 제 인상에 남았습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그런 평정이 가능할까? 물론 평정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그조차도 높은 평정심이 필요한 일로 보입니다.
며칠 전입니다. A사와 A 프로젝트의 중요한 사안을 다룰 줌 미팅을 15분 남겨두고 있는데, B 프로젝트의 담당자로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요청 메일이 왔습니다. 급하게 B 프로젝트 관련 작업을 하고 있는 에이전시에 연락을 해서 읍소하며 기다려 주십사 전화를 걸어 보지만 전화 연결이 안 됩니다. B사 담당자에게 기한 없이 계속할 수는 없으니 최종 검수 기한을 정하자는 말을 메일에 적는데(최근에 B사의 기존 담당자 병가로 새로운 담당자의 전화 연락처가 없었습니다) 감정이 올라옵니다. 당장 A사 줌 미팅을 대기하는 와중에 B사 담당자 연락이 옵니다. B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도중 다시 좀 전에 연락했던 에이전시에서도 전화가 오고요. 바로 이어 A사로부터 전화 연락이 옵니다. 통화 중에 급하게 전화를 연결해서 받았지만 A사도, B 에이전시도 전화 연결이 안 됩니다. 마음이 요동칩니다. 아직도 이런 일에 균형을 놓치는 게 스스로 한심합니다.
세 명의 전화가 다시 오는 순서에도, 통화 중 부재에도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었죠. 애당초, B사의 메일에 대응하기 전에 A사와의 미팅을 먼저 잘 마무리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제 다급한 마음에 일이 꼬이게 되었던 겁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판단했을 때는 평정심을 찾는 것이 중요함에도 영화 속 다스몰처럼 가쁜 호흡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던 거죠. 감정에 휩싸이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지각하지 못하고,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기 일쑵니다.
명상에 대해서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감정에 휩싸이고 심장이 빨리 뛴다 싶을 때는,
1. 그것을 인지합니다. 내가 지금 흥분하고 있다는 것.
2. 시간을 갖습니다. 최소한 두 배는 천천히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누군가 저를 기다리게 하는 일은 세상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닙니다.
3. 대응에 몸이 나가지 않고선 못 베기겠다면, 상대에게 '정리해서 알려주겠다 시간을 달라'합니다. 재빨리 대응하지 못 하는 무능이 아니라 침착한 유능함으로 보일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4. 우선순위대로 일을 처리 하되, 모든 말과 행동에 불필요한 감정이 섞일 일은 없을지 미리 정리(시뮬레이션)합니다.
5. 다음, 라이트 세이버를 뽑아 듭니다.
저는 이 단계를 잊지 않고자 영화 속 콰이곤이 그 찰나의 순간에 좌선하는 장면을 떠올리곤 합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