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즈니스에서 IP 비즈니스로의 전환
넷플릭스 오프라인 스토어인 '넷플릭스 하우스'가 2025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마케팅을 위한 팝업스토어와는 달리 넷플릭스의 상설 놀이 공간입니다. 오징어게임 코스를 체험하기도 하고 브리저튼 코스튬을 하고, 기묘한 이야기의 재현 세트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넷플릭스 콘텐츠에 나왔던 음식을 맛볼 수 있기도 하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나온 음식들을 내놓는 레스토랑인 넷플릭스 바이츠는 지난 6월 이미 할리우드에 팝업 레스토랑으로 선 보인 바 있습니다.
열쇠고리와 티셔츠 팔고 디저트들 판다고 넷플릭스에 높은 수익을 가져올 순 없겠죠. '넷플릭스 하우스'는 오리지널 시리즈의 팝업스토어와 마찬가지로 일단은 마케팅 역할이 먼저 일 겁니다. 마케팅인데 오리지널 시리즈를 마케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브랜드 자체를 마케팅하는 브랜드 하우스인 것입니다. 넷플릭스의 소비자 제품 담당 부사장 조시 사이먼은 " 팬들이 우리 영화와 TV 프로그램의 세계에 몰입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인했으며, 이를 어떻게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다"라고 밝혔는데요. 아마 저 '한 단계 더 발전'의 끝에는 디즈니랜드가 있겠지요. 브랜드를 막강하게 하는 것은 물론 수익까지 가져오는 엄청난 황금 거위가 바로 디즈니랜드이니까요.
르세라핌의 유튜브 채널에 이들이 홍콩의 디즈니랜드에 다녀온 자컨(자체 콘텐츠)이 있습니다. 갖가지 놀이기구와 음식을 즐긴 그들은 디즈니랜드의 백미인, 디즈니랜드 성을 배경으로 한 불꽃놀이 분수쇼를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디즈니의 핵심 콘텐츠 영상이 분수 위로 프로젝션 되며 메인 음악과 함께 불꽃놀이가 펼쳐지죠. 각각의 디즈니 영화 음악이 영상과 함께 나오면 감동이 몰려옵니다. 순간 어렸을 때 봤던 그 영상의 추억과 기억이 분수 위에 수놓은 프로젝션처럼 플래시백이 되겠죠. 실제 르세라핌 자컨 영상에서도 멤버들은 '모아나'나 '코코'의 영상과 음악이 나올 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당연히 알라딘이나 인어공주 같은 영상이 디즈니의 올타임 레전드라고 생각했고 그 영상과 음악들이 분수쇼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 분수쇼에서는 픽사의 최신작들과 겨울왕국, 모아나, 코코가 영상의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세대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죠. 이 세대에겐 이 영화들이 디즈니를 대표하는 즉, 자신의 어릴 적 추억에 남은 콘텐츠일 테니까요. 디즈니는 어떻게 반 세기가 넘도록 누군가 30년 전 어떤 영화를 봤건, 다른 세대의 누군가가 10년 전 다른 영화를 봤건 디즈니랜드의 분수쇼에서 그 영상과 음악이 나오자마자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었을까요?
블룸버그에서는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을 통해 벌어들인 예상 수익은 우리나라 돈으로 1조 2,250억 원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제작비는 294억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요. 기묘한 이야기 한 시즌 제작비의 1/10 정도였던 것을 감안할 때 넷플릭스로서 이는 엄청난 수익 콘텐츠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오징어게임은 물론 역시나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킹덤의 국내 제작사도 제작비 외에는 이렇다 할 추가 수익을 낼 수 없었죠. 이에 반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지상파에 기획이 거절되어 KT에서 투자해 제작/방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종전의 히트를 칩니다. 넷플릭스에도 '납품'을 했고요. 원천 IP의 지대한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제작비 150억의 10배 이상의 수익이 고스란히 손에 남게 된 겁니다. CJ ENM과 같은 콘텐츠 미디어 회사들은 이 우영우의 성공 방정식에 확신을 가지고 우영우의 성공 재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금 넷플릭스에 가입한 사람은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기묘한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 할겁니다."
원천 IP가 중요한 건 다 알죠. 이는 단지 제작사이자 투자사가 유통사에게 수익을 뺏기지 않는 자원의 문제는 아닙니다. 넷플릭스는 현재 유통사에서 투자사이자 제작사가 된 것이니까요. 다른 제작사들(우영우 제작사)은 투자사(KT)와 함께 유통사(ENA)로 거듭나길 꿈꾸고 있는 형국이고요. 하지만 아이피도 아이피 나름입니다. 흥행하는 아이피를 가지고 있다고 다 능사는 아니죠. '홈랜드'나 '빌리언즈' 같은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드라마들이 오징어게임이나 기묘한 이야기처럼 아이피를 활용한 사업을 전개하기 수월했을까요? 제3국에서의 스파이 활동과 주식 거래를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인 콘텐츠로 테마파크나 레스토랑을 상상할 수 있나요? 결국 인기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해당 아이피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으로 쏠리게 됩니다. 그러니 초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하우스오브카드' 같은 작품을 좋아했던 제게는 넷플릭스는 시간이 갈수록 10~20대 용 판타지물 일색이 되어 점점 외면하게 되는 겁니다. 제가 외면하든 안 하든 넷플릭스는 돈을 잘만 벌고 있지만요.
아이피를 가지고 있더라도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의 존재론적 약점은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죠. 만약 지금 넷플릭스를 가입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에게 기묘한 이야기는 넷플릭스 화면을 아무리 스크롤해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최근에 이슈가 되는 콘텐츠를 팔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죠.
이제 최종 시즌을 앞두고 있다는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는 여러 시즌에 걸쳐 몇 년 동안 인기를 구가했고 덕분에 많은 열혈 팬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어릴 적 단 한번 본 코코는 디즈니 분수쇼에서 음악만 나오는데도 눈물이 흐르는 걸까요? 실제로, 그 눈물을 흘린 사람은 디즈니랜드에서 코코 관련 굿즈를 얼마나 구매했을까요?
일단 '한 번 밖에 본 적 없는'은 정말 한 번이 아니겠죠. 아이들은 재밌는 만화 영화를 반복해서 봅니다. 보고 나면 맥도날드 맥밀로 나오고요. 코카콜라의 캔 커버로 나오기도 합니다. 먹는 음식에 코코가 그려져 있고, 가지고 놀 장난감에, 학교에 들고 갈 가방과 모든 학용품에 코코가 새겨진 제품이 점령합니다. 몇 년 동안 시즌으로 나온 기묘한 이야기보다도 체감 기간이 길 수 있죠. 감정적 색인의 깊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를 어른이 되어 코코로 이루어진 디즈니랜드의 테마 섹션에 들어선다? 마지막 피날레의 분수쇼에서 보는 코코는 다시 한번 앞으로 10년의 기억 도장을 확실히 세기는 결과가 되겠죠.(자컨에서 르세라핌은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코코를 틀어놓고 시청합니다.)
"어떻게 어릴 적 단 한번만 본 코코는 디즈니랜드에서 음악만 나오는데도 눈물이 흘렀던 걸까요?"
이것이 단지 어린이 대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 여정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대로 어른의 경험으로 치환해 보세요. 어른들에게 뭐가 맥밀이고, 뭐가 코카콜라고, 뭐가 즐겨 먹는 음식이고, 뭐가 학교 가방이며, 뭐가 테마파크일지.
OTT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에 들어가면 스타워즈 섹션에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9개)를 제외하고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지 한번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스핀오프까지. 그나마 디즈니플러스에 올라온 건 스타워즈 콘텐츠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스타워즈 콘텐츠가 존재합니다. 스타워즈는 오래되고 전통 있는 IP이니까? 마블 섹션도 비슷합니다. 디즈니가 마블을 사자말자 디즈니는 스타워즈의 그것과 같은 일들을 마블 콘텐츠들에 수행합니다. 스타워즈를 제작했던 루카스필름 역시 과거 디즈니가 사들인 것이지만, 1977년에 처음 나온 스타워즈를 2020년 마지막 시리즈가 개봉할 때까지 노인이고 아이고 스타워즈 코스튬을 하고 극장으로 불러온 것은 계속해서 잊지 않고 그 콘텐츠의 충성심을 아이피를 통해 적극적으로 육성한 아이피 장인, 디즈니의 비즈니스 내공입니다.
'스트리트우먼파이트'(이하 스우파)는 명실상부 CJ ENM의 효자 아이피가 되었습니다. 스맨파 등이 기대만큼 흥행하진 못했지만 이번에 방송된 스우파 시즌2는 시즌1 만큼이나 인기몰이를 했죠. mnet이 스우파를 활용하는 방법은 이번 시즌2에서 진일보한 면이 있습니다.
우선, 계급 챌린지 곡을 자체 제작했죠. 스우파1 때 '헤이마마'로 입금됐을 저작권료가 얼마나 뼈아팠을까요? 이번 계급 챌린지에 사용된 음원들은 아티스트와 함께 mnet에서 자체 제작하였고, 역시나 이번 시즌에서도 리더 계급의 곡이었던 '스모크'는 챌린지 영상과 함께 무수히 재생되고 확산되었습니다. 유튜브에 '더춤'이라는 채널도 스우파 시즌1 이후에 만들어졌죠. 시즌1에서mnet 자체 영상 플레이어에 가둬 놓았던 콘텐츠를 유튜브로 적극적으로 이관했고, 다양한 동영상 채널에서 흩뿌려지던 조회수를 고스란히 '더춤'이라는 mnet의 채널로 쓸어 담을 수 있었습니다. 시즌1에서는 아마도 향후 판권 판매 때문에 유튜브 영상들에 해외 시청 제한을 걸어두었던 것 같지만 이번 시즌은 해외 시청 제한을 풀어 공개하였고 결과적으로는 1억 뷰 이상의 시청 기록을 세웠죠. 전 세계적으로 '스우파'의 인지도와 흥행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스우파라는 아이피를 이 정도로만 활용하는 건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 조기 탈락했던 츠바킬은 유튜브 채널을 급조하여 한국 방문 콘텐츠와 브이로그 등을 한국어 자막을 달아 올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글로벌 팀이었던 잼리퍼블릭은 그런 부지런함까지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스우파2를 통해 '모셔가는' 미디어나 기획사 채널들이 많아 어쨌건 콘텐츠들이 우후죽순 쏟아집니다. 그에 비해 국내 팀들은 콘텐츠 제작이 저조한 수준이고요. 만일, 스우파 전담 제작팀이 각 댄스팀에 붙어 방송 종료 이후 양질의 유튜브 영상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면요? 물론 수익은 적절한 수준으로 아티스트와 엠넷이 배분한다는 전제입니다.(비슷한 일환으로, 11월 13일부터 티빙오리지널에서는 '월드와이드로그' 시리즈로 츠바킬, 잼리퍼블릭, 원밀리언, 베베 팀 총 4개의 추가 제작 콘텐츠를 공개합니다.)
"광고 받아오는 기존의 방송 BM으로는 한계가 명확하죠."
잼리퍼블릭은 동남아의 댄스 아카데미로부터 워크숍에 초빙되어 다니느라 바쁩니다. 물론 커스틴은 기존 댄스씬에서도 유명세가 있었으나 동남아의 그 국가들은 갑자기 왜 이렇게나 잼리퍼블릭에게 러브콜을 보냈을까요? 아시다시피 잼리퍼블릭이나 츠바킬은 모두 스우파 방송을 위해서 구성된 어셈블 팀들입니다. 즉, 기존에 명성을 쌓아 온 팀 단위가 아니었죠. 스우파의 영향력이 지대했을 겁니다. 대형 아카데미 시스템이 갖춰진 원밀리언을 제외하더라도 어셈블로 만들어진 참가팀들의 댄스 워크숍과 클래스들을 스우파 이름으로 CJ에서 운영했더라면요? 요즘은 지방 소도시에서조차 입시 학원은 없어져도 댄스 학원은 새로 생긴다는 말이 있지요. 댄스 챌린지를 할 수 있는 전용 앱을 스우파 이름으로 개발해서 론칭했다면요? 각 참가팀들의 권리와 계약 관계에 따른 한계들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CJ가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든지 타개해 볼 일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우파의 마지막 2회는 ppl의 온상이었습니다. 방송 전 세팅되는 메인 스폰서(MAC과 꼬깔콘, 링티 등)를 제외하곤 시즌 중간 시청률 성적을 바탕으로 제작진에서 열일하여 광고를 체결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방송사 시스템에서는 당연한 비즈니스 모델이겠습니다만 십 년이 넘도록 방송 포맷도 비즈니스 모델도 1mm도 변화하지 않는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이 고착된 방송국의 일이 애처롭게까지 보입니다. 스우파 방송 후 전국 투어로 티켓 팔고, 티셔츠 팔아서야 콘텐츠에 인생 약혼 반지를 끼우는 디즈니나 다른 차원의 팬덤 비즈니스를 깨우친 하이브 같은 회사에서 보면 아마추어 수준의 비즈니스 전개라 개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트시그널'의 채널A나 '환승연애'의 티빙은 유사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자사의 오리지널 IP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정녕 없었을까요? 환승연예의 제작진은 일반 출연진들에게 광고 멘트를 시키기 어려워 PPL을 적극적으로 받지는 못했다고 하는데요. 광고가 아니면 들썩이는 인기를 수익 또는 지속적인 팬덤으로 치환할 방법이 없었을까요? 하다못해 데이팅앱과 아이피를 활용한 다양한 콜라보레이션만 해도 비즈니스모델은 무수해 보입니다. 광고 받아오는 방송국의 기존 BM 개념으로만 가지고 있어서야 한계가 명확하죠. 그렇게나 즐겁게 본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팬덤을 적극적으로 증폭해 줍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구사해야죠.
"기존 방송국이 가진 미디어 비즈니스 로직을 콘텐츠 또는 IP 비즈니스 로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IP를 브랜드화해내지 못하면, 해당 시즌에 누가 나와서 대박 짤을 만들어 내느냐로 프로그램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도박에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브랜드로서가 아니라 그저 다음 히트 상품을 기대하는 일만큼 안갯속 비즈니스가 없습니다. 한 시즌을 성공하면 다음 시즌 때 그전 시즌 시청률 성공으로 광고의 반절을 팔고, 중간 시청률 성적으로 나머지 반을 팔고... 이걸 시즌이 전개될 때마다 방송국은 반복하고 있는 것이죠. 디즈니나 하이브였다면 다음 시즌이 할 때까지 시청자들 아니 최소한 팬들의 목줄을 단단히 부여잡고 다음 시즌까지 끌고 가는 방법을 강구해 냈을 겁니다. 넷플릭스였다면 글쎄요, 스우파로 디즈니랜드 만드는 것을 꿈꿀지도요.
IP가 깡패라지만 활용을 못 하면 소용 없겠죠. 콘텐츠 IP는 프로그램의 충성도를 가져가기 좋은 포맷의 '브랜드' 입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게임'의 브랜드를 일단 확실히 구축했고, 이후 넷플릭스 자체의 브랜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죠. 넷플릭스 자체 브랜딩에서 오징어게임 IP를 적극 활용함은 물론입니다. 설령 오징어게임 시즌2가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오징어게임의 팬덤은 넷플릭스라는 브랜드 팬덤으로 고스란히 건져 가고 싶으니까요.
기존 방송국이 가진 미디어 비즈니스 로직을 콘텐츠 또는 IP 비즈니스 로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우파 같은 흥행작은 쉽게 나오기 어렵겠죠. 출연진들에게 꼬깔콘 먹이고 안마의자에 앉히는 걸로만 이 아이피를 활용하기에는 아깝지 않나요?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