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시대에서의 광고란.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현대자동차의 신형 싼타페 광고 영상을 봤습니다. 직업상 그리고, 호기심으로 광고들을 일부러 찾아서 봅니다만 이 현대자동차의 싼타페 광고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더군요. 흡사 2000년대 광고를 보는 착각 마저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고가 그러려니 별 생각없이 보는 광고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TVC나 커다란 광고 캠페인은 브랜드 입장에서는 지출이 큰 만큼 기대도 큰 마케팅 방식입니다. 여러분의 브랜드가 전단지에 가장 많은 자금을 지출한다면 그 전단지나 대기업의 TVC나 다를 바 없는 것이죠. 즉, 브랜드와 상품을 보여주는 기회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안개 속에 차량의 루프 탑 텐트 레더에 걸터 앉아 한 남자가 캠핑 머그에 커피를 마시며 도심의 전경을 바라봅니다. "자연도 만들 수 없는 절경. 출근 전, 사무실 건너편에서" 라는 자막이 나오고 마지막에 '일상과 일상 사이를 열다.' 라는 나레이션이 나옵니다. 건물들을 봐선 시카고로 사료되는데요. 이 도심을 배경으로 서양 모델이 출연하고 마지막에 차량은 텅 빈 시카고 도심을 가로지릅니다.
광고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는 결국 이미지(인상)를 팔지, 재미나 공감을 통한 감동을 팔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뼈대는 이미지와 감동이지 제품의 성능은 아닙니다. 제품의 차별점과 성능은 그 이미지와 감동 아래에 잘 묻힐수록 상품의 장점은 더 부각됩니다. 대부분 알고 있는 공식 수준입니다만 광고에서 상품의 장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광고주와 제작사 사이의 어중간한 '합의'에 의해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죠. 현장에 있어 본 사람으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뼈대는 이미지와 감동이지 제품의 성능이 아닙니다."
싼타페의 새로운 광고는 기본적으로 제품의 핵심 타깃에 특화된 기능과 성능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촉발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무려 현대자동차 광고임에도 이미지에 제품의 기능을 부각하는 것이 아닌 제품 기능에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역전된 광고의 역할이 어색해보이고, 이미지(인상)를 구현하는 콘텐츠에 현실의 이야기임직한 설정으로 공감을 유도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이 광고의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 설정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는 충분히 알겠지만 출근 전 루프탑 텐트를 펼치고 그 사이드 레더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설정이 "에엥?"을 유발했던 거지요. 인스타그램 광고 포스팅의 댓글에도 이런 의견들이 나옵니다. "출근 전 같은 소리하네.", "출근 전에 여유있냐", "회사 생활은 해봤냐", 왜인지 해당 포스팅에서 비슷한 댓글들이 지워지고는 있는데, 지워진 댓글에는 "정작 광고 만든 사람이 캠핑을 해봤는지 의문이다." 와 같은 평도 있었습니다. 아니 단지 멋진 이미지 연출 광고에 왜 그렇게 정색이냐 하면 바로, 멋진 이미지 연출에서 '공감'을 연출하고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싼타페의 핵심 타깃은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의 남성일 확률이 높고 그들에게는 루프탑 텐트나 아웃도어 친화적인 제품의 '기능'보다도 저 비현실을 현실의 이야기로 쓴 것이 더 거슬렸던 것이죠.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 그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을 동경하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광고 캠페인 시리즈 모두 각각 테일게이트나 선루프 등을 부각하기 위해 무리수의 설정들이 이어집니다. '일상에 있다'는 메시지에만 매몰되어 비현실의 일상을 '이미지'로 활용한 것 같아 안타까운 것이죠. 결국 이미지의 설정 뿐 아니라 메시지도 와 닿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싼타페 광고의 배경은 시카고 도심입니다. 어김없이 '서양 모델'이 출연하고요. 해당 자동차를 부각하기 위해 텅 빈 시카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비일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전 삼성의 광고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어김없이 백인 남녀가 나와 뉴욕이나 밀라노 같은 배경으로 런웨이를 하듯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이 왜 때문인지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제품의 '특장점'을 CG를 통해 연출해보이는 광고 일색이었죠. 이후 삼성전자의 북미와 유럽 광고에 겨우 유색인종이 등장했고 몇 년 전부터야 한국인 모델이 메인 모델로 나오는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기 애플 광고에서는 유색인종은 말할 것도 없고 현실에 사는 뚱뚱하고 서투르고 키가 작고 불안하지만 뭔가를 믿고, 도전하는 그런 사람들의 스토리가 나왔죠. 그 전까지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의 광고에서 어색함을 못 느끼던 사람들도 애플의 스토리텔링을 보면서는 뭔가 다른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스토리와 메시지로 인해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아마도 행복)가 손에 잡힐 것만 같았죠.
모델하우스의 마네킹이 아닌 살아있는 '주위의' 사람들이었던 거죠. 그리고 이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을 포착합니다. 물론 광고에 제품이 자연스럽게 등장했지만 이 기기가 없으면 이 행복도 없다고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이 행복에 이 기기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주지할 뿐이었죠.
현대자동차도 한동안 국내 모델로 스토리텔링 광고나 공감의 광고도 잘 집행해왔습니다만 이번 싼타페 광고에서는 이 어색한 사대주의 코드를 다시 끄집어 낸 거 같아 의아했던 것이죠. 마치 광고를 시카고의 멋진 배경에 선진국의 백인 모델로 치장하고 싶은 이미지로 쉽게 결론낸 것 같아서요. 더 고민해봤다면 다른 '이미지'나 '공감'을 무기로 광고를 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고민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이번 싼타페의 정식 명칭은 '디 올 뉴 싼타페(The all-new SANTAFE)'입니다. 그 전에 'The new'도 있었고 'All-new'도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그걸 다 합쳐 'The all-new' 라고 명명했네요. 해당 라인을 유구히 가져가야 할 쏘나타나 그렌저 같은 모델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자동차는 모델명 앞에 이 세 단어의 조합을 계속 합쳐낼 뿐이죠. 다음 건, Real all-new 같은 명명이라도 해야하는 걸까요? 아시다시피 해당 모델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모델이 출시됩니다. 이 '새로움'을 각인시킬 표현 방법이 이토록 빈곤했을지 의문입니다.
지난 월드컵에서도 그렇고 현대자동차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대회에서의 메인 스폰서십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지난 7월 20일부터 한달 간 진행된 2023 FIFA 여자월드컵에서도 현대자동차는 메인스폰서로서 자리했습니다. 여자 월드컵이 개최될 즈음 현대자동차에서 낸 광고는 수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한 공장의 뒤뜰에서 시작된 여자 축구의 역사가 광고 화면에서 재현되면서 자연스럽게 현대 여자 축구의 씬들로 진화합니다. 국가대표 지소연 선수가 나레이션을 합니다. "당신이 달려온 길,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아갈 길." 지난 세월 동안 축구를 응원해 온 팬들의 모습이 지난 현대자동차들을 배경으로 스쳐지나갑니다. 메시지와 캠페인 목적과 브랜드 인지를 모두 절묘하게 엮어내고 있죠.
"광고주는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기회를 사는 겁니다."
FIFA 여자 월드컵 세기의 골 캠페인처럼 '이미지(인상)' 광고에서 메시지는 이미지에 부합되어야 하고 또 그래서 강렬해야 합니다. 바로 얼마 전부터 온에어 되고 있는 BMW 광고가 그것을 잘 이행하지 못 하는 사례로 보입니다. BMW코리아는 몇 해 전부터 특정 셀럽의 경력과 위상을 바탕으로 BMW의 이미지에 결착시키는 이미지 광고를 자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BMW XM 모델의 광고 모델은 지드레곤으로, 출시행사 등의 보도자료에서부터 선전을 했죠. 그런데 정작 메인 광고 영상물에서 지드레곤의 나레이션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결과물이 나오고 말았습니다.(링크) BMW에서는 더 이상 새롭게 증명해야 할 제품의 어떤 성능이 아닌 이 셀럽들의 위상에 부응하는 BMW의 이미지를 결부시키고 메시지로 정점을 찍는 형태의 광고물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 하는 결과물의 아쉬움이 더 컸던 것이죠. 영상은 뭔가 멋있지만 사실상 '메시지'가 누락되어 버린 광고가 나온 셈입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영상을 포함한 이미지 광고는 그 역할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눈을 못 뗄 대상을 이미지에 집어 넣고 그 이미지에 집중하게 하는 광고의 역할은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눈을 떼지 못 할 이미지를 구사하는 주체와 매체가 너무 광범위해졌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모든 연예인들이 자신의 채널을 통해 이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30초 동안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연예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즉, 광고에서 광고 모델의 희소성을 볼모로 시선을 강탈하기란 어렵게 됐습니다. 핸드폰만 열어보면 그 연예인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니까요. 찾아 보기만 하나요. 삶을 통째로 들여다 봅니다. 덕분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상반되는 이미지를 광고에서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매일 노포에서 소주 반주를 즐기는 사람을 싱글몰트 위스키 모델로 발탁하기는 어려워졌죠.
"광고 모델의 희소성을 볼모로 시선을 강탈하기란 어렵게 됐습니다."
광고주는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기회를 사는 겁니다. 그 기회를 위해 비싼 광고 모델을 써온 것이고요. 하지만 상당부분 그 기능이 위에서 말한 디지털 미디어의 변화로 인해 예전만큼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그러니까 소비자의 공감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 낼 광고가 더 중요해졌지요.
모든 광고가 감동과 메시지를 강렬하게 발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시선을 사로잡고 재미있고 또 화제거리가 되는 광고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또 충분히 작동합니다. 그것은 광고의 기본 원칙에 정확히 부합되기도 하고요.
첫째, 인지되어야 합니다. 인지이지 설명이 아닙니다. 많은 브랜드는 설명하면 인지시킬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여러분이 곰에 살해되는 최현석 셰프가 나오는 캐논 광고(링크)를 보고 캐논 카메라의 특장점을 확인했나요? 제품 설명이나 부각이 적음에도 모두가 '캐논'을 확실하게 인지했죠.
둘째,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움은 웃기는 것 뿐 아닌 울리는 것을 다 포함합니다. 이를 쉽게 획득하고자 아이와 강아지를 자주 광고에 투입하지요. 여러분이 KCC스위첸 아파트 광고를 볼 때 신혼부부의 현실을 재미있게 바라보면서 공감하지 않았나요? 이 재미있는 스토리의 마지막에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함께 지어가는 집, 가족은 그렇게 태어납니다."라는 메시지는 강하게 와 닿습니다. KCC가 어떤 가치로 아파트를 짓는지 단명하게 전달함은 물론입니다.
셋째, 반복 각인시킵니다. 대표적인 게 음악이죠. 산와머니나 에듀윌 CM송은 누가 들어도 그 브랜드를 떠올립니다. 광고를 심각하게 보거나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조차 각인시키는 것이죠. CM송이 라디오 매체에 특화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운드의 활용은 비단 CM송에만 있지 않습니다. 작금의 브랜딩에서 로고 사운드는 중요한 브랜드 각인 방식이죠. 그 유명한 인텔인사이드에서부터 매일 여러분 가정에서 한번은 울릴 빨간색 N 로고가 무지개 스펙트럼으로 확대되며 나오는 그 사운드처럼요.
TVC나 대형 캠페인 진행 가능 여부와 상관 없이 모든 광고의 형식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는 분들이라면 광고 그 자체에 함몰되는 것을 견제해야 합니다. 메시지를 설정해놓고 메시지에 부합하는 광고 모델과 영상 이미지를 조합한 후 여기에 제품의 장점을 부각시키자는 '이상적인' 계획은 위에서 언급한 현대자동차나 BMW의 광고와 같은 결과물을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그 두 광고가 훌륭한 광고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누구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더라도 광고주의 본전 생각이 안 나는 광고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메시지라면 스토리에 집중하고, 인상이라면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 이미지는 그저 멋져 보이는 것으로 쉽게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또 100%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미지와 스토리는 세상에 무궁무진합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