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이 밥을 먹여줍니다.
브랜드 컨설팅을 하면 응당 다양한 분석과 인사이트, 또 그를 통한 새로운 브랜드의 조립이 이루어집니다. 대부분의 분석과 인사이트 도출은 브랜드 오너나 담당자와 함께 진행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고객사 또는 파트너들이 가장 의구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미션 스테이트먼트 규명입니다.
미션 스테이트먼트는 언제 만들어야 하는 일일까요? 대부분은 브랜드의 처음 시작, 또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정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별 생각이 없었다가 운이 좋게 브랜드가 성장하며 구성원과 고객들에게 핵심 줄기를 표명해야 한다고 필요를 느낄 때도 있죠. 이때 만들어지는 미션 스테이트먼트는 마치 브랜드를 잘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브랜드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로 이를 시장에서 잘 증명하고 있을 때이니까요. 반대로 브랜드의 초기 설립 단계에서 만들어진 미션 스테이트먼트는 거창하고 멋집니다. 지구의 환경이나 세계 평화도 요원한 일은 아닐 것만 같은 미션이 그 앞에 새겨지지요. 그리고는 점점 홈페이지에 새겨진 하나의 문구로 유물화 되기 시작합니다.
브랜드를 처음 만들었거나, 성장 가도에 있는 상황에서 브랜드의 미션을 정하거나 정비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 미션을 정말 여태 수행해 온 것 같고, 또는 앞으로도 그 미션에 의해 지금의 성장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이 드니까요.
저는 브랜드 운영을 어느 정도 해 온 분들의 브랜드 쇄신을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매출의 위기가 고조되어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기 위해서가 주된 이유가 되지요. 매출의 위기를 드라마틱하게 반전하고 싶기에 비주얼과 어쩌면 네이밍까지 브랜드의 기존 고객과 잠재 고객들에게 눈에 띌 변화와 이를 확산시킬 마케팅을 통해 기회를 찾고 싶어 하는 경우가 일반입니다.
컨설팅 워크숍을 진행하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미션 스테이트먼트와 마주하게 됩니다. 아니 제가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요. 십중팔구 담당자들의 반응은 '이걸 왜?'라는 표정이 됩니다. 미션 스테이트먼트를 모르고 해당 브랜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지만 경험상 상당수는 그 문장, 그 단어들을 생소하게 바라봅니다. 이 낯섬은 익숙함에서 오는 일이라고 할 텐데요, 입사할 때라면 몰라도 그 이후에 그 문장, 그 단어들은 소비자에게 향하는 총구지 자신이 들여다봐야 할 총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총구를 자신이 직접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총을 겨누고 있다는 명제만 있을 때가 많죠. 어떤 총인지 총알인지는 상관 없어집니다. 총은 발사되고 총알을 맞으면 누군가는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사실 거기에는 총을 겨누고 있다는 명제만 있을 때가 많죠. 어떤 총인지 총알인지는 상관 없이요."
총구를 한번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그 문장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는 미친 듯이 낯뜨거운 일을 해보고 그것에 대해서 30초 간이라도 생각해 보게 되면 점점 그 문장은 낯설어집니다. 이윽고 각자 하고 있는 일이 그 미션에 어떻게 부합되는지 설명해 보라 하면 헛웃음만 짓습니다.
'아니 이건 사명문이고요, 저희는 고객을 확보하고 매출을...'
사실 이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해당 브랜드는 마케팅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전과 미션은 소비자에 향하는 창으로만 생각하고, 이를 각자 해야 할 일의 목표와 결부시킬 수 없다면, 또는 팀과 개인이 그렇게 믿지 못한다면 그건 조직의 미션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되는 일이겠죠. 안타깝지만 많은 조직의 구성원은 브랜드의 미션이 작동하는 것과 일은 별개라는 인식이 태반입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모든 분석과 협의의 결과 기존 미션은 어긋남이 없다면, 그것이 '일과 별개'의 것이 되는 인식을 개선하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입니다. 소비자가 그것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어떻게 상품과 커뮤니케이션에 적용하는지 결정하고, 그것을 시행하여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더 공고히 해 나가는 일이죠.
두 번째 방법은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그것이 고객에 미치는 영향으로 가치 판단을 하고, 애초에 두었던 미션 또는 목적이 변하거나 틀리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지금의 브랜드가 나아가는 가치와의 교집합에 있는 브랜드의 새로운 미션을 정의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문장 하나를 바꾸는 일일 수는 없고요. 첫 번째의 일과 같이 조직 내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 따라와야 합니다.
처음부터 미션 스테이트먼트의 문장 윤색이나 하자고 덤벼들 건 아닙니다. 그랬다간 여전히 칠판 위에 적힌 사훈 수준으로 존재할 뿐이죠.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전달하고 어떻게 전달하여 소비자가 어떤 가치를 가져가는지 해체하여 규명 가능한 단위로 정의합니다. 그래야 미션의 중요성을 반증할 수 있고 그래야 미션이 거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작동하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것의 필요성도 알게 될 터이고요.
"자동차를 팔고 있으면 자동차가 뭐라고 생각하냐 물어봅니다."
이 과정들을 수행하기 위해 하는 일 중 하나가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규명하는 일입니다. 먼저 소비자에게 파는 물건을 정의하는 일에서 시작해 봅니다. 자동차를 팔고 있으면 자동차가 뭐라고 생각하냐, 화장품이 뭐라고 생각하냐, 소주가 무엇이라 생각하냐, 티(tea)가 무엇이냐를 모두 함께 정의해 봅니다. 처음에 이 질문을 들으면 당황합니다. 물성 정의를 아는지 물어보는 게 아님을 알거든요. 자동차가, 화장품이, 티가 무엇인지 그것을 만들어 팔고 있는, 어쩌면 가장 그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니까요.
디자인을 어떻게 바꾸면, 트렌드를 어떻게 따르면, 포장을 어떻게 하면 소비자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대부분 거의 기계에 가까운 수준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사각은 대게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소비자가 팔천 만원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만 오천 원을 지불하는 것에 어떤 가치를 교환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거나 소비하면서 어떤 가치를 충족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찰은 얇아지기 일쑤입니다. 디자인을 어떻게 바꾸면, 마케팅을 어떻게 바꾸면 하는 정형화된 공식이 이러한 성찰의 필요성을 잃게 만들죠.
오래된 영상이지만 작은 브랜드나 회사에서 미션스테이트먼트를 이상하게 만들지 않는 힌트가 있습니다.
상품에 대한 전문 역량은 언제나 필요합니다만 그 상품을 고도화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을 결정하는 일은 소비자 이해에 따르고 소비자 이해의 핵심은 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에 있습니다. 판매자는 이를 상품의 물성 가치로만 이해하는 것에 고착화되기 쉬운 것이죠. 그래서 상품의, 또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상품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더 기울어져 있어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정말 많은 기업과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여전히 상품에 있습니다. 혁신이나 신뢰, 차별화, 미래, 안전... 이런 키워드들에서 잘 나타나죠. 이는 사실 기업이 가지고 싶은 가치이거나 어필하고 싶은 가치에 가깝습니다.
"기업이 가지고 싶은 가치가 아닌 소비자가 가져야 할 가치."
소비자가 어떤 가치를 굳이 당신의 '그 상품'을 통해서만 획득하느냐가 핵심 가치에 부합되어야 하고 핵심 가치를 구현하는 매개 구현이 '그 상품'의 정의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상품의 카테고리 즉, 그 상품의 대명사로 일컫는 물건의 정의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네 바퀴로 굴러가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물건이 아닌, 자동차를 '무엇'으로 이 브랜드가 정의하기 때문에 이 브랜드가 만드는 '이 자동차는 어떤 것이다'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상품은 무엇이다'라고 주창하는 대부분의 브랜드의 말이 그저 멋스러운 말뿐으로 들리는 이유는 그 상품 카테고리에 대한 이 브랜드만의 적확한 해석과 비전이 없이 그저 만들어 낸 상품에만 의미 부여를 하기 때문일 때가 많죠. 그래서 자동차가 뭔지, 화장품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소주가 무슨 의미인지를 먼저 확인합니다. 그 대명사의 정의부터 잡혀야 우리 브랜드의 '그 상품'의 정의든 휘장이든 제대로 갖출 수 있으니까요.
찻잎을 우려서 따뜻하게 마시는 음료라는 단순한 물성 정의가 아닌 '차는 몸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음료'라고 차에 대해 OO브랜드가 생각하는 정의를 내려보면 그제서야 OO브랜드 차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연결하는 문'이라는 상품의 정의에도 닿을 수 있는 것이죠.
가치와 정의를 확립하면 그제서야 목적, 즉 미션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목적의 강력한 힘은 상품을 홍보하고 권유하는 것에서부터 드러납니다. 멋진 카피를 쓰고 눈에 사로잡히는 디자인을 해서 일시적인 매출을 가져오는 상품도 있고 또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당신이 당신의 상품에 무언가 태그를 해놓거나 메시지를 써붙여 놓는다면 그것은 근거가 있는 것이어야 할 겁니다. 마치 인증 마크처럼요. 작금의 마케팅에서 왜 how가 아닌 why에 집중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지요. 소비자들은 how의 판단 기준조차 why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미션 스테이트먼트는 이 목적을 규명하는 가장 중요한 깃발인 것입니다. 이 목적과 약속이 이들(브랜드)과 이것(브랜드의 상품)이 돌아가는 이유임을 밝히는 가장 넓은 층위의 프로토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목적이 희미해지면 이윤 창출이 무뎌집니다. 우선 순위가 분명한 문제죠."
목표를 간과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여기에서 목표 없이는 공조차도 내리막길에서 내려가지 않으니까요. 목표에 매진하면서도 목표가 목적에 닿는지를, 목표의 수행이 목적에 부합되는지를 계속해서 연결하지 않으면 일에 목표만 남고 목적은 사라지기 십상입니다. "이윤만 창출하면 목적이야 무슨 상관인가?" 네, 제가 지금 이윤 창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목적이 희미해지면 파는 사람의 목표 의식이 더뎌지는 것은 물론이고 돈을 지불해야 할 사람들이 '이유'를 못 찾으며 결국 구매와 경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죠. 그러니까 목적이 희미해지면 이윤 창출이 무뎌집니다. 이는 닭과 달걀의 문제는 아닙니다.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는 문제죠.
간혹 많은 브랜드들이 사훈처럼 걸어 놓은 사명문을 쉽게 손대지 못합니다. 혹은 손 대면 안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선대 창립자의 뜻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경우도 있고, 목적이 변하면 신뢰가 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걱정하는 일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바뀌어도 됩니다. 브랜드는 유기체와 같고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더 큰 가치 혹은 새로운 가치와 만나기도 합니다. 버리고 싶은 가치도 있고 가져가고 싶은 가치도 있지요.
처음에 말한 대로, 미션과 비전 확립은 브랜드 설립에만 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드가 어떤 국면을 넘어갈 때이기도 하고 내외부적인 상황으로 인해 쇄신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처음 브랜드를 만들 때 이런 정의를 내려보고 비전을 상상해보고 하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을 마구 뻗쳐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아시겠지만 현실이 닥치면 이 '이상'들은 그냥 이상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상(미션)과 현실(생존 또는 이윤추구)은 점점 분리되어 가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이상이어도 현실은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지요.
만약 초기의 브랜드 생존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상과 현실은 계속해서 멀어집니다. 이것이 더 멀어지기 전에 목적과 비전을 수정하여 단단히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혼자서 고정하고 있다고 해서도 안 되겠지요. 당신의 브랜드는 혼자서 물건을 만들고 혼자 포장하고 혼자 배송하며 혼자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니니까요. 그 각각의 일을 하고 있는 구성원들과 적합한 동기부여들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확인해 나갔으면 합니다. 마치 선대 회장님의 사훈 마냥 구성원들에게 이걸 지켜달라 애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작동하면 어떻게 퍼포먼스가 달라지고 어떤 가치(그것이 단지 이윤이어도 좋습니다)를 각자 가져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 주세요. 어떤 단위가 되었든 리더가 이것을 할 수 있으려면 목표와 목적을 얼마큼 등가교환 해야 하는지 분명히 서 있어야 할 겁니다. 다만 그것은 단순한 일련의 목표 희생이 아닌 지속적인 성장 담보임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소비자에게 던지는 창이라고만 생각했던 미션 스테이트먼트는 결국 브랜드 내부를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갑옷이 됩니다. 손에 들고 있는 창이 더 날카로워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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