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지금의 마케팅은 그냥 보편화된 기술입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을 통해 국내에도 방영된 세 명의 억만장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네트워크 그리고 자본 그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고 낯선 도시에 가서 90일 만에 100만 달러(10억이라고 상정)의 가치를 가진 사업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의구심이 드는 일련의 정황들도 있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가치를 교환해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실천했습니다. 처음엔 100달러의 시드머니와 몸뚱아리가 전부인고로 자신의 노동력을 가치로 교환하는 일부터 시작하지요. 해당 지역의 특정한 문제(빈민층에 건강 주스 판매)를 풀거나, 해당 지역에서 돈 줄의 맥을 잡고 있는 사람을 공략(여러 사업을 하는 지역 사업가를 통한 비즈니스 마케팅)하거나, 해당 지역에 낙후한 자원을 다양한 기회로 전환(허름한 여인숙을 다채로운 공간 비즈니스로 변환)시키는 일을 합니다.
세 명 모두 굴하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질적, 양적인 서포트 없이 가능한 자원을 불려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갑니다. 특히나 눈 앞의 카테고리 즉, 사업 분야를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는 건 빛나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세 명 모두 그 지역에서 처음 발견한 문제 또는 처음 찾아 본 사람 또는 처음 묵었던 숙소에서 각자 이 모든 사업의 발단을 촉발합니다. 수중에 100달러 밖에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대단한 블루오션이나 기회를 찾기 위해 시간 낭비 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결론적으로 이 세 명은 모두 90일 이후 자신이 일군 비즈니스를 평가받고 모두 100만 달러 이상의 벨류에이션을 받습니다.
이 중에 국내에서도 유명한 그랜트 카돈은 마케팅 회사를 만들어 참가자 중 마지막에 가장 높은 벨류에이션을 받는데요. 개인적으로는 프로그램 내에서 세 명 중 가장 사업 수완이 허술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가 매트리스 판매상이나 지역 은행, 인테리어 시공사들에 SNS 마케팅을 해주겠다며 미팅을 하는데 그 어떤 시안 조차 보여주지도 않고 획기적인 방법론도 없이, "TV나 신문으로 광고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15년 전에나 할 이야기를 하며 클라이언트들을 설득해서 연간 10만 달러에서 6만 달러 사이의 리테이너 계약을 맺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몇 십년 전 만들어진 콘텐츠가 아닙니다. 불과 2년 전에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프로그램 상 과장이나 꾸밈이 있었다 치더라도 아직도 저런 마케팅 에이전시의 설득이 통하는 거죠. 미국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간의 거래가 중요해서 말과 태도로 중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여전히 예삿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미국은 거대 시장입니다. 한 가지 아이템을 한 지역에서 잘 판 뒤에 영리하게만 움직인다면 전국적인 사업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전국 사업이 되면 그 규모만으로도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떨치는 사업체로 올라설 수도 있고요. 참가자 중 모니카의 전국 비즈니스 플래닝은 꽤나 그럴싸했죠.
"결국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도 가치를 교환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케팅 회사로 채택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엄청난 레퍼런스에, 지난한 비딩에, 가장 고도화된 기술적 방법론에, 콘텐츠 자체도 눈에 띌 만큼 찬란해야 합니다. 그러고도 엄청난 경쟁자들과 경쟁해야 하죠. 한마디로 시장은 좁은데 전세계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고도화 되어있고 그로 인해 모든 유행과 트렌드가 가장 빠른 나랍니다. 즉, 뭐 하나로 차별화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차별화를 오래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곳입니다. 시장이 좁으면 저 프로그램에 나왔던 로컬 비즈니스처럼 쉽기라도 해야할텐데 계약을 따기란 극악의 경쟁 조건을 갖춘 곳이죠. 그렇다고 그렇게 결과를 내서 굉장한 성과를 얻냐고 하면 그건 또 시장이 작고 빠르다 보니까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가소로운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전세계에 팔 수 있는 IT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각광 받는 걸테고요.
그랜트 카돈이 도전했던 프에블로라는 지역에서의 사업이라면 'marketing matter'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마케팅 자체가 사업을 좌지우지 하는 비즈니스는 이제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마케팅 자체가 비즈니스가 된 사업들은 차고 넘치죠. "뭘 팔지 선택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실행하느냐고, 실행이라면 결국 마케팅이 아닌가?" 아닙니다. 수 많은 방법과 기술이 산재해 있는 것 같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통영화된 의미의)마케팅은 그냥 보편화된 기술입니다. 한국같은 고도화된 시장에서는 상품 포장에 가까우리만치 일반적인 일입니다. META나 google 광고를 집행할 때 더이상 타기팅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모호합니다. 한 두 라운드만 돌면 AI가 적합한 타기팅을 합니다. 임의로 타기팅이라고 해봤자 광고 단가만 높아질 뿐이죠. 좀 더 고전적인 홍보를 한다고요? 모든 미디어는 광고와 ppl 또는 native ads에 최적화된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리뷰해 줄 블로거 유튜버, 인플루언서는 타깃과 예산에 맞게 다 포지셔닝 되어 있습니다. 예산만 적절히 투여한다면 모두 다 자신이나 또는 상품을 알리는 데에 부족한 게 없는 곳이죠. 예전엔 이런 적당한 미디어를 선택하고 연결하는 역할(media planning & media buying)을 하는 사람도 필요했지만 이제는 누구라도 그 어떤 미디어나 그 누구에게 연락하거나 광고 구좌를 살 수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 메타의 시스템이 친절하게 상대해줍니다. 그리고 기존 미디어들도 그 시스템을 따라 구축됩니다.
"지금의 마케팅은 그냥 보편화된 기술입니다. 상품 포장에 가까우리만치 일반적인 일입니다."
씨유편의점 유튜브 채널은 지금 보니까 구독자가 80만이 넘었네요. 편의점 고인물 시리즈로 인기를 모으며 이제는 먹방 콘텐츠, 메타버스 활용한 콘텐츠, 셀럽을 통한 소개 콘텐츠 등 다양한 콘텐츠 라인업들이 생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채널 내에서 적극적으로 PB상품들을 노출하는 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인기를 구가하던 콘텐츠들은 다른 편의점 브랜드에서 구현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콘텐츠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저 역시 콘텐츠마케팅을 국내 여러 기업에 적용한 사람입니다만 콘텐츠마케팅이 때론 트래픽 장사로 오해를 사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또는 제공한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면 콘텐츠의 효과를 다시 재고해봐야 합니다. 시청자는 그냥 콘텐츠만 소비할 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구독자로 묶어두고 상품을 직간접적으로 노출하면 그 효과가 어딘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잡은 물고기의 꼬리만 떼어 먹고 버리는 꼴입니다.
비단 씨유편의점 사례 뿐 아니라 수많은 브랜드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이러한 방식을 구사합니다. 광고를 통해 만들어진 구독자 숫자는 알고리즘을 유도하고 그렇게 진성 타깃이 그물망 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쟁사가 몇 만이니까 우리도 10K 찍자던지 숫자에 매몰되어 정말 '콘텐츠'를 활용하는 장에서 '콘텐츠'를 통해 뭘 해야하는지 망각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미 구독자는 광고를 통해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말이죠.
"여러분 같으면 마케팅 에이전시에 팔로워가 1만 넘지 않게 유의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나요?"
실제로 소규모 패션 브랜드 중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던 경쟁 브랜드와 비슷한 시기에 팝업 이벤트가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열 배 많은 팔로워가 있던 브랜드 보다 더 높은 매출을 낳았습니다. 단기성 매출 뿐 아니라 재구매 대상이 훨씬 많기도 했지요(이게 더 중요한 일입니다). 실상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제 어떤 브랜드에서는 자신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맞는 사람들이 정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팔로워 수를 일정량 이상 늘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마케팅을 담당하는 에이전시에 일정 기간 동안 팔로워가 1만 넘지 않게 유의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나요? 에이전시는 일이 편해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어려운 클라이언트 요청이 아닐까 싶습니다. 콘텐츠 하나하나 완전히 달라져야 하고 광고로만은 살 수 없는 진성 고객을 찾아야 하니까요.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
스티브 잡스가 당시 펩시의 CEO였던 존 스컬리를 애플로 영입할 때 설득한 일화로 유명한 말입니다. 그런데 설탕물을 팔다뇨. 존 스컬리는 '도전'과 '젊음'을 팔고 있었는걸요? 아마 저 같으면 이렇게도 바꿀 수 있는 말입니다. "남은 평생 세상에 도전과 젊음을 다시 정의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몇 가지 반도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기계를 팔겠습니까?" 물론 잡스는 애플 컴퓨터에만 '이것'을 대입해 표현했고 펩시는 단지 물성으로서 설탕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잡스가 그 말에서 애플컴퓨터에 대입한 것은 바로,
'가치'입니다.
경영 전략은 품질과 성능을 만듭니다. 그리고 브랜드 전략은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가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요. 사용자 이해를 근간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할 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즉, 선명한 가치 제공을 담보하지 못 한다면 그 어떤 마케팅도 힘에 부치는 일이 되겠죠. 품질과 성능만으로 그 산을 넘어갈 수는 있어도 마케팅만으로는 그 산을 넘을 수 없습니다. 마케팅은 숏텀에서 승리할 수 있지만 롱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물론 브랜딩이란 단지 로고 얘기가 아닙니다.
"유형의 가치는 대체가능한 것이 너무 많거든요."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구매하는 것이다.' 마케터라면 마르고 닳도록 들었을 명제입니다. 소비자가 가치를 교환하도록(네, 구매가 아닙니다. 지금의 소비자는 그 이상의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교환입니다)만드는 일, 이것이 마케터의 일일테죠. 바꾸어 말하면 상품이 브랜드 전략에 의해 가치를 잘 구성하고 있다면 마케팅은 그것이 적절한 대상과 잘 닿도록 연결하는 또는 촉발하는 기능을 하는 겁니다. 그 기능을 시스템이나 AI가 잘 해주는 세상이라면, 가치를 공고히 하는 일에 더 매진하는 것이 지금의 비즈니스에서 요구되는 일일 것입니다.
내가 또는 우리 회사가 세상에 내는 제품, 어지간히 잘 만들고 신경 썼을까요? 이제 출시를 앞두고 잘 홍보해서 잘 팔면 되는 그 시험대만 남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브랜드 전략이 견고하고 제품도 잘 나와서 마케팅 액티비티만 잘 수행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상품도 있습니다만 간혹 클라이언트 상담 시에 가치가 분명하지 않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제품의 기능과 효용성 등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교환을 할 사람에게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유형의 효득은 있을지 몰라도 교환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무형의 가치가 모자란 경우를 뜻합니다. 유형의 가치는 대체가능한 것이 너무 많거든요.
추운 겨울 뜨거운 그것을 들고 호호 불어가며 온기를 채울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붕어빵이라면 예컨대, 모락모락 김이 더 잘 보이게 연출한 가판에 추억의 옛날 봉투를 사용하거나 '90년대 레시피 그대로'라는 메시지를 써붙인 붕어빵 집이 '팥이 잔뜩 들었다'거나 '100원 더 싸다고' 피력하는 붕어빵 집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붕어빵을 좋아합니다만 붕어빵이 세상에 그것만이 낼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맛을 내기 때문인가요? 당신이 추운 겨울 사 먹은 건 설탕과 밀가루 덩어리인가요? 따뜻한 기억인가요?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