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브랜드북에 무엇이 적혀 있나요?
브랜드의 목소리는 왜 힘을 잃고, 조직은 왜 반복해서 무너질까요?
철학 없는 브랜드가 겪는 세 가지 구조적 결함을 중심으로 브랜드의 철학을 다시 세우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브랜드 철학 설계(Brand Philosophy Arcitecture) - 조직의 브랜드 철학을 명확히 하고, 언어와 실행의 기준을 구조화하는 실천적 방법론
1. 매출은 브랜드의 철학이 아닙니다.
2. 브랜드의 언어가 있나요?
3. 꺼내보지 않는 브랜드북
브랜드북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조직의 브랜드 철학과 언어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문서죠.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공유 드라이브 안에서 잠들어 있을 뿐, 실제 조직 내에서 실천적 기준으로 작동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브랜드의 키컬러나 BI, 애플리케이션 가이드와 같은 가시적 템플릿조차 마지막 작업 결과물을 레퍼런스 삼아 현재의 작업에 적용하곤 합니다. 결국 실무자 중에는 특히나 비주얼 결과물을 내는 경우가 아니라면 브랜드북에 나와 있는 브랜드의 주요 자산을 참고하게 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러한 브랜드북 또는 매니페스토 형식의 결과물은 특히 대표에게는 특별한 결과물처럼 비칩니다. 그 안에서 브랜드는 한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정리된 것만 같습니다. 리뉴얼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북을 받아보면 앞으로 브랜드가 이 멋진 비주얼과 말로써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고양되기도 합니다. 비록 그것이 대표의 무거운 책상 서랍 속에서 수장되더라도 말이죠. 실제로 이런 케이스는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브랜드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브랜드북에 적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핵심 가치나 톤앤매너, 미션, 비전... 이와 같은 철학 단서는 미션 스테이트먼트와 같은 문서로 정리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선언'한 보기 좋은 글귀가 아니라 서로가 '약속'한 제 1순위의 조직 실행 기준이어야 하고요.
우리는 참으로 무언가 '정리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철학이 예쁜 레이아웃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은 사실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조직 내에서 '정렬(alignment)' 되었냐죠. 많은 기업의 전략기획팀이나 브랜드팀에서 그저 이 결과물을 잘 완성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을 봅니다. 제작 이후, 전사적 브리핑으로 내용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공표에 가깝지 실천적 약속이 되긴 어렵습니다. 이 결과물을 잘 내어 보여 좋은 성과로 보일 사람은 아마도 조직 내에 단 한 명 밖에 없을 겁니다.
설령 조직 구성원들이 그 철학에 '약속'했더라도 철학이 실무의 면면에서 실행의 기준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업무 흐름과 판단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참조되지 않는다면, 개인은 각자의 합리와 최선을 기준으로 삼게 되고, 그로 인해 조직은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조직은 효율성에 기준을 세우거나, 누구에게나 명징한 숫자를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그렇게 조직은 차별화되거나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브랜드로부터 멀어지게 되죠.
"철학이 실제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브랜드 내에서 비주얼 가이드의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단번에 눈에 띕니다. 왼쪽에 넣어야 할 로고가 오른쪽에 박힌 채 포스팅이 제작되면 누군가로부터 지적당하겠죠(그 일조차 벌어지지 않으면 정말 큰일입니다만). 브랜드의 디자인적 요소는 직관적입니다. 다른 폰트를 쓰거나 템플릿에 어긋난 레이아웃을 구사하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죠.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남도 그것을 쉽게 알아봅니다.
반면,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는 내가 지금 모순된 결정을 하는지, 위배되는 성격의 고객 대응을 하는지, 이질적인 메시지를 쓰는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구성원도 그것을 판단하기 어렵죠. 키컬러나 로고를 잘못 쓰면 브랜드에 엄청난 위해가 발생합니다. 아마도 그 실수를 한 직원은 일련의 책임을 져야 할 테고요. 그런데 브랜드의 철학을 잘못 구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첫째, 그것이 불러오는 폐해를 간과하기 때문이고 둘째, 그것이 잘못됐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지키는 방법은 알 수가 없지요. 본인도 모르니 다른 사람도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없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고 해보죠. 카피라이팅을 할 때 믿음, 소망,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 걸까요? 캠페인을 할 때, 저 단어를 어떻게든 삽입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요? 단어가 삽입되지 않은 것으로 가치를 구현하지 않았다고 평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제품 전략을 짤 때 믿음, 소망, 사랑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나요? 결국 이 핵심 가치는 단지 추상적 규칙으로 남을 뿐입니다.
철학은 실행이 가능한 형태로 구조화되어야 합니다. 브랜드가 무엇을 믿는다고 선언했다면, 그것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의사 선택과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결정들로 브랜드의 면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각자의 일에서 철학이 실행에 적용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계속해서 창립 멤버만으로 운영되는 브랜드가 얼마나 될까요? 다른 조직에서 경력을 쌓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들어온 멤버, 이 조직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멤버,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반대로 약한 멤버, 다양한 배경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에 모여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의 가치로 일에 임하라고 할 건가요? 아니 약속을 받아낼 건가요?
조직에서 휴가계를 쓰거나, 영수증 처리, 업무 보고서를 쓰는 양식과 시스템이 각자 있을 겁니다. 다른 조직에서 옮겨오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조직의 시스템을 익히죠. 서로 어렵지 않게 행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철학은 좀 다릅니다. 인사팀에서 '이 철학이 당신의 업무에 꼭 반영되도록 유념하라'라고 해서 고스란히 작동할 일은 없을 겁니다. 면접에서, 그리고 입사 오리엔테이션에서 이 조직에서 지켜야 할 업무 양식보다 더 깊고 자세히 설명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회사의 철학입니다.
철학은 브랜드가 존재하는 중요한 사고의 뿌리를 공유하는 겁니다. 그다음, 구성원 본인의 개인적 가치 중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이고, 교집합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채근하며 브랜드와 구성원 각자의 가치를 본딩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입사 시점에만 벌어져서는 안 되고, 주기적으로 이탈 지점이나 구획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제 생각엔 이 확인이, 형식적으로 반복하는 근무 만족도 조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은 실행이 가능한 형태로 구조화 되어야 한다."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 회사는 물론이고 개인에게 왜 중요한 일인지를 각성시키지 못한다면 이 가치가 각자의 업무에 있어 1순위의 기준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로소 이 철학이 실행의 기준이 되면, 일은 모두에게 한 차원 수월해집니다.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정렬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브랜드는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BPA(Brand Philosophy Architecture)와 같이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구조가 조직 내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브랜드북처럼 단순히 철학이 정리된 문서가 아니라 조직 내부의 모든 실행과정과 의사결정을 안내하는 살아있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의 워크플로우에서 철학과 동조되는 체크리스트를 점검하여 진행하고, 가치 플로우를 통해 다른 팀으로 단계가 넘어갈 때 가치의 누락이 없는지 확인하고, 브랜드 랭귀지 북과 키트로 외부로 나가는 언어뿐 아니라 내부에서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할 언어까지 손쉽게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이죠.
이는 회사의 PPT 템플릿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브랜드의 언어를 지키는 일이죠. 회사의 PPT 템플릿이나 보고서 양식을 따르면서 불만하는 사람은 없을 테죠. 심지어 이것을 지키는 일은 자기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공동의 목적과 동조하게 되면 그 사람은 어제와는 다른 레벨로 올라섭니다. 구성원들이 모두 이러한 단계로 올라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구성원들이 철학 구조를 지키는 일이 익숙해지기만 하면 조직이 그전에는 닿을 수 없었던 효율성을 갖게 되며, 브랜드는 단단하고 또 뾰족해질 수 있습니다.
"공동의 목적과 동조하게 되면 그 사람은 어제와는 다른 레벨로 올라선다."
브랜드 철학이 작동하는 조직이라면 외부에 회사 소개를 할 때 "우리 브랜드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배재할 수 있는지"의 부분을 대표나 신입 사원, 그 누가 설명해도 동일한 것은 물론 거리낌이 없어야 할 겁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철학의 실천 구조가 있나요?
1. 매출은 브랜드의 철학이 아닙니다.
2. 브랜드의 언어가 있나요?
3. 꺼내보지 않는 브랜드북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