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절을 떠올려보면, 누군가 제게 ‘생산성의 노예’라고 불러도 딱히 반론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업무량도 사실이었지만 그 많은 일들이 최대한 잘 굴러가기 위한 효율성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동화할 수 있는 건 자동화하고,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그 구조를 만들어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이 일련의 일들은 생산성이라는 말로 쉽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생산성이 꽤나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요.
생산성에 대한 집착은 일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습니다. 놀이도, 쉼도, 관계까지 생산성의 매커니즘이 작동했습니다. 일은 괜찮았지만 점차 일이 아닌, 삶의 많은 것들이 돌아가는 방식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러한 작동 방식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비단 일에서만 그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모순되고도 부조리한 일이었습니다.
일의 결과와 성과들을 펼쳐놓고 보니 제가 믿던 생산성 추구가 장기적으로 일과 삶의 진짜 효율을 뜻하지는 않더군요.
생산성을 생각할 때 우리가 쉽게 속는 기준은 속도입니다. 빨리 해서 좋은 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빠른 속도는 죄가 없습니다. 빠른 속도를 지향할 때 벌어지는 수많은 착오와 오류들 때문이죠. 속도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는 것이 진정한 폐해이기도 하고요.
저는 대한민국의 믿을 수 없이 빨랐던 산업화를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설령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것을 앗아가게 되는 결과를 맞더라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시민 문화와 민주화가 좀 더 산업화의 속도에 걸맞게 발전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그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늘 상상하곤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실제로 과거에는 멀티태스킹이 일을 잘하는 사람의 속성처럼 여겨졌습니다. 이십여 년 전의 저는 멀티태스킹에 능한 사람이었다고 착각했습니다. 일이나 사태 파악을 빠르게 하는 일천한 능력을 과신했고, 그 특혜를 이용해 한 번에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트랙에 올릴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저글링은 다량의 공을 공중에 던져 돌려받는 묘기입니다. 다만 그 공들은 계속 손과 손 사이를 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공을 던져 어떤 목표 지점에 정확히 들어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고요. 어떤 투수도 공 두 개를 동시에 던져 포수의 글로브로 넣을 수는 없을 겁니다.
생산성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불필요한 일을 선택하지 않는 일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행을 떠올려보죠. 하루 동안 처음 간 관광지에 머문다면, 가장 멋진 볼거리와 그곳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을 방문하며 ‘효율적’으로 그 하루를 채우는 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생산성이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들도 알고 있겠죠. 주요 관광지가 아닌 그 지역의 낯선 골목에서도 즐거운 재미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줄 서는 식당보다 우연히 발견하고 들어간 그 지역 노포의 맛을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입니다. 낯선 골목이 별 감흥 없고, 검증되지 않은 식당의 음식이 맛없을 수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바로 그 불필요의 효용입니다. 그 경험이 없다면 언제까지고 누군가의 경치와 맛집만 경험하며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쌓아가게 될 테니까요.
불필요의 제거는 단순화와는 다릅니다. 불필요한 일을 제거하는 것과 선택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일부러라도 불필요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 좋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불필요한 일을 제거하는 단순화는, 일이든 삶이든 생산성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입니다. 단순화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어떤 일들은 제거해야 하고, 제거한 일은 그제서야 불필요한 일로 분류되는 것이죠. 그러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도 엄청난 자기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선택들은 그저 호불호 수준은 아닙니다.
이제 어떤 일을 할 때 필연적으로 AI의 검증 과정을 거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런데 일부러 AI의 그 일목요연한 정리와 디렉션을 우회해 일을 하기도 합니다. AI가 점프하게 해줄 그 단계들을 굳이 몸소 뒹구는 일, 분명 느리고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과정이 어떤 일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지혜를 세월은 남겨주더군요.
저는 과거, 생산성을 잘못 해석하고 또 추구했습니다. 여전히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이제 그 방법론들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기준들을 가지고 있나요?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