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인지도가 과연 중요할까?
간혹 드라마에서는 손수 사업을 일군 나이가 지긋한 1세대 오너들이 임직원들에게 "'그 상품'하면 우리 회사가 떠오를 수 있도록 뭐 그런 회사로 만들자 이거야." 하는 식의 대사를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가 아니라 저도 일선에서 몇몇 임원들에게 저 문장 그대로의 말을 꽤나 들었더랬습니다. 사람들이 그 상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인기 있는 브랜드이자, 그 상품군 하면 대표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오너들에게는 당연한 욕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이 사업하던 때에나 통용될 수 있던 전사적 목표이자 방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은 단순했고, 미디어는 일방향이었고, 제품은 그보다 더 한정적이었던 때를 말하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장의 1위가 되고, 상품군을 대표하는 제품이자 브랜드가 되는 것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을 때입니다. 그렇게 상품군의 대표 브랜드가 된 그 브랜드가, 그 상품이 어떤 브랜드고 상품인지는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상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때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내놓긴 어렵습니다. 예컨대, "품질좋은 양말을 냈으니 잘 팔릴 거야."와 같은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업주나 브랜드는 없을 테니까요. 가치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카테고리 군에서 점유율만을 가져 가고 싶다는 생각은 모순에 가까워졌습니다. 자동차하면 현대자동차를 떠올리게 할 것인가요? '즐거운 드라이빙', '어디에도 부족함이 없는 위상', '안전한 이동수단'. 각각 BMW와 메르세데스, 그리고 볼보를 가리킵니다. 이 브랜드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도 하지요. 핵심 가치가 아닌 것으로는 1위는 커녕 시장에서 생존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보편적 가치로는 브랜드 인지도에서 회장님의 기대를 저버릴 것이 여지없습니다.
"평균적인 선수 보단 다른 수치들이 떨어지더라도 어느 한 지점의 수치가 높은 선수를 감독은 더 선호하죠."
인도는 세계 3위의 자동차 시장입니다. 2024년 상반기 인도에서의 시장 점유율 1위 자동차 브랜드는 40.8% 점유율을 가진 스즈키입니다. 스즈키는 인도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0%의 점유율도 쉽게 가져갔습니다. 1998년에는 83%에 육박했죠. 그야말로 인도에서는 '자동차' 하면 스즈키를 떠올릴만합니다. 현대자동차가 몇 년 간 15% 내외로 2위를 달렸고 근소한 차이로 인도 자국 회사인 타타모터스가 3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즈키는 자국인 일본에서는 3위 권에도 들어가기 힘든 브랜드입니다만 인도는 스즈키의 60%의 생산량을 가진 나라입니다. 가장 저렴하고, 인도 국민에게 합리적인 이유로 스즈키는 인도에서 각광받고 있죠. 인도는 지구상에 남은 가장 매력적인 시장임에 분명합니다. 가장 가파르게 GDP와 국가 생산력이 상승하는 나라 중 하나니까요. 즉 아직 성숙 단계에 있는 시장입니다. 한국과 같은 시장에서는 인도에서와 '같은 이유'로 자동차가 많이 팔리긴 불가능하죠. 자동차와 같은 고가의 상품이 아닌 일반 소비재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팔려야 하는 이유와 사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확고한 시장 아니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만두 하면 어떤 만두를 떠올리나요? 40대 이상이라면 아직까지도 '고향만두'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시장 점유율 1위의 만두는 CJ의 '비비고만두'입니다. 점유율이 무려 40%를 차지합니다. 만두 판매율 1위 자리를 역전한 것은 2014년의 일로, 이미 10년 동안 CJ의 비비고 만두는 점유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수성해오고 있습니다.
"고향만두의 유구한 비주얼이 고향만두의 가치였을까요?"
고향만두는 연령층이 높은 주부들에게 여전히 만두의 대명사임에도 시장에서 어떻게 이런 대반전이 벌어졌을까요? 비비고만두 즉, CJ가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는 지난 십 년 동안 여러분이 마트와 케이블 TV와 유튜브, 때로는 해외에서의 활동을 통해 여실히 지켜보았습니다. 냉동만두는 오랫동안 마트에서 사는 1+1 만두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냉동만두 특유의 1+1 판매에 더해 푸짐하고 정감 어린 이미지는 고향만두의 큰 장점이었습니다. 냉동식품 중 압도적인 판매 1위 카테고리가 바로 냉동만두입니다. 냉동만두는 예부터 주부들이 냉동고에 오래 쟁여두고 언제든 간단하게 끼니나 간식으로 '때울 수 있는' 음식의 대명사였죠. 비비고만두는 '맛있는' 만두를 지향했습니다. 비비고는 초창기, 냉동만두의 불문율에 가까운 가격대를 '맛'을 위해 무너뜨리고 판매합니다. 침대도 아닌데 '만두는 과학'이라는 말까지 불사했죠. CJ의 미디어 산업을 적극 활용한 것은 물론입니다만 결국 만두는 재구매가 높은 그야말로 식품으로, 맛에 대한 차별화는 순식간에 시장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당연하지만 영원한 승자는 없습니다. 고향만두가 오랜 시간 시장을 점령해 오다가 새로운 제품에 역전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다만, 1위 자리가 바뀌고 10년이 지나도록 고향만두가 해오던 노력은 아쉬운 점이 많았죠. 말한 대로 불변의 만두 대표 이미지인 고향만두의 맛과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비비고가 독보적 시장 점유율을 가져간 후에도 수차례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비주얼로 도전의 도전을 거듭할 때조차도 고향만두는 지난 향수와 추억을 버리지 않았고, '34년 전통의 원조의 맛'만을 호소했죠. 해태제과 역시 CJ제일제당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만두 상품 개발이 활발했지만 소비자의 눈에는 비슷한 제품으로 인식되기 쉽습니다. CJ제일제당이 식품 연구비로 매년 300억씩 쓸 때, 해태제과는 매년 2~3억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예견된 결말과도 같았죠. 비주얼적으로도 기존 고향만두의 골수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빨간색 바탕에 초록 띠 패키지와 '고향만두' 타이포그래피를 고집스럽게 유지했습니다. 결국 시장점유율에서 1위와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고향만두의 유구한 비주얼이 고향만두의 가치였을까요? 브랜드의 가치가 아닌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고향의 맛'이 진정한 가치였다면 사람들이 '고향의 맛'이 무엇인지 보편적으로 그 가치를 존중하고 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흔히들 색깔이나 개성이라고 하지만 이는 단지 변별력의 척도일 뿐, 브랜드에 있어 그 색깔이나 개성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만 이 개성은 의미를 가집니다. 아마도 그 개성은 필시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일 테고요. 명확한 가치가 부재한 채로 시장 점유율과 인지도만을 목표로 한다면 온갖 엄한 곳을 다 건드리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격일 것이고요. 또 대부분 시장에서 잘 나가는 브랜드의 장점을 답습하게 되죠. 그러니 애초에 어느 기업의 회장님이 임직원들에게 했어야 하는 말은 "우리 상품이 '어떤 것'(가치)으로는 이 제품군에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회사가 되자."가 옳은 말이었을 겁니다.
브랜드 파워 인덱스(Brand Power Index)는 BPI라는 이름으로 기업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척도입니다. 브랜드 인식지표(인지도), 브랜드 평가지표(이미지), 브랜드 행위지표(충성도)의 평가값들로, 아시다시피 기본적으로는 마케팅 활동성과 즉, 마케팅 ROI를 확인하는 지표로도 활용됩니다.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브랜드가 마케팅 활동의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며, 경쟁사와의 점유율 확보의 방향으로도 사용됩니다. 주주들에게 브랜드 성과와 가치를 피력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사용처입니다. 기본 소비재와 같이 제품의 특별한 차별화가 드러나기 어려운 제품군에서 더 광범위하게 활용되죠. 주방 수세미를 떠올려보세요. 엄청난 차별점이나 소구점이 있을 수 있을까요? 기업은 내부만 해도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성과 지표나 숫자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설득과 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즉, BPI가 필요한 면은 분명히 있는 것이죠.
하지만 당신이 친환경 자연 수세미를 대중화하기 위한 브랜드를 만들고 그러한 제품을 팔기로 했다면 브랜드 인지도라는 것은 간접 자료에 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직접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다른 곳에서 체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인스타그램에 어떤 반응을 볼 수도 있고요. 팝업스토어에서 얼마나 줄을 세웠는지로 브랜드 파워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체감'은 모순이 무수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인스타그램에 그저 좋아요를 눌러 준 사람은 추호도 당신의 브랜드를 옹호하지 않을 사람일 수도 있고요. 팝업스토어에 줄을 선 것은 '성수동'이라는 브랜드 때문이지 당신의 브랜드 때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면밀하게 체감해야 할 일은 바로 브랜드가 추구한 가치 때문에 사람들이 반응한 것인지와 그 가치 때문에 어떤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지, 그 가치는 브랜드가 의도한 만큼 전달되는지입니다. 즉, 소비자 조사가 아니라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그 브랜드에, 그 상품에 명확한 가치가 우선시되어야겠지요. 축구에서 육각형 능력이 고루 최고치인 선수는 드뭅니다. 육각형의 수치가 전부 평균보다 좋은 선수가 아닌, 다른 수치들이 떨어지더라도 어느 한 지점의 수치가 높은 선수를 감독은 더 선호하고 기용합니다. 전략에 세워야 하는 말은 그것에 차별화된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팬들이 이런 선수를 더 기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가치가 명확하게 서있고 그것이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상입니다. 누구에게 그 가치가 팔리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매 후 조사가 더 필요하고, 구매한 사람과 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이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충성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결국 그 사람을 연구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인지도를 확장시켜야 합니다.
"누구에게 그 가치가 팔리는지 알고 그 가치로 구매한 사람과 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브랜드가 가치도 명확히 세웠고 그 가치를 분명하게 피력했음에도 소비의 단계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인식되거나 판매된다면 어떻게 할까요? 버버리는 한 때 영국의 차브족들이 선호하면서 추락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몇몇 패션 브랜드에서는 이런 일이 잦았죠. 우리나라에서도 조폭이나 건달들이 입는 브랜드로 이미지가 추락했던 명품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럭셔리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러한 이미지를 기대했는데 정반대의 소비가 일어나니 장기적으로 브랜드에 더없이 치명적인 일이 되겠죠. 이런 일이 내 브랜드에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때는 먼저 브랜드가 생각했던 가치를 진정으로 볼 수 있고 또 가치 있게 쳐줄 수 있는 대상에게 어필할 만큼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만을 생각할 게 아니라 브랜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가치가 어디에서 누수 또는 왜곡됐는지 확인해야 하죠.
기업에서 BPI를 받아들이는 우선순위는 대개 얼마큼 유명하고(브랜드 인지도), 어떤 감성의 이미지고(브랜드 이미지), 누구에게 충성도를 가지는가(브랜드 충성도)입니다. 엄청난 대량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면 반대로 누구에게, 어떤 이미지로, 얼마큼 유명한가의 순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가치를 분명히 하면 뾰족해집니다. 뾰족하고 정확한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모수가 당장 적은 것은 거론의 여지가 없는 불필요한 걱정입니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과 소비자들에 있어 의미 있고 또 합리적인 확산은 어느 씬에서 '누군가들'이 선호하는 것이 확산되는 형태입니다. 한꺼번에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에게 인기를 끌고, 그곳에서 마이너 한 변별점을 발견한 다른 소수에게로 이식되고, 그렇게 소수에게 단단하게 이식될 때 큰 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꺼지지 않는 불길이 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죠. 그런 식의 느린 확산 전에 투자금은 다 소진되거나 어찌 됐건 그럴 여유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식의 느린 확산을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방식이 느려 보일 뿐 브랜드의 가치가 진정 가치 있는 것이라면 확산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됐든 '순식 간의 확산'과 다름없이 번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분명한 가치 없이 만루 홈런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것이 더 가망 없는 일이라고 해야죠.
"진정 가치 있는 것이라면 확산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됐든 '순식간의 확산'과 다름없이 번질 수 있습니다."
섹스앤더시티에서 PR전문가 역할로 나온 사만다가 극 중에 한 (마케터들에게만)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모델 남친이 앱솔루트 보드카의 첫 광고 모델이 된 후 큰 반향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그저 게이들이나 그 광고에 반응한다고 모델 남친이 한숨을 쉽니다. 그러자 사만다가 자신 있게 말하죠. "자기야, 처음엔 게이, 그럼 십 대 소녀들이 달려들 거야, 그다음은 everyone!"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